한국은행은 주택가격 하락으로 이른바 '깡통아파트'가 늘어나고 있다며 소유주와 세입자들이 재무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전반적인 가계부채 증가세는 둔화됐으나 자영업자와 저소득층 부채는 오히려 부실 위험이 커졌다고 밝혔다.

유럽 재정위기가 다시 부각될 전망이라며 세계 경제가 여전히 회복하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도 내놨다. 국내 경제도 유로위기 장기화, 중국의 성장세 둔화, 가계부채 누증에 따른 민간소비 회복 제약 등으로 하방리스크가 우세하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60%를 넘는 대출이 증가해 디레버리징(차입 축소) 압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다만 차입 축소 과정에서 자산 가격 등이 하락해 채무 부담이 커지는 '부채 디플레이션'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

한은은 31일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자영업자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 가계부채, 주택가격 하락에 따른 재무적 위험, 한계기업 급증 등 금융과 관련된 여러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 전세값 포함 깡통아파트, 전세주택의 26%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중 LTV 60% 초과대출 비중은 2009년말 11.6%에서 올해 6월말 현재 17.9%로 급증했으며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LTV가 60%를 넘는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80%인 28조1000억원 가량이 2년 내 원금상환시기가 도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3월말 현재 LTV 규제상한(60%)을 초과하는 대출 중 이자만 납입하고 있어 만기연장 시 원금 중 일부를 상환해야 할 가능성이 있는 대출은 35조원 정도다. 주택가격이 20% 하락할 경우 이런 고위험대출은 93조원으로 현재의 3배 정도까지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중 만기연장시 실제 상환해야 하는 금액은 현재 2조원(2012~2014년)에서 주택가격 20% 하락시 11조원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인천 등 수도권 지역 주택가격이 급락하면서 해당 지역 주택구입자의 채무상환부담이 커졌다. 주택값 하락으로 담보가치가 떨어지면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상승했고, 이로 인해 가계의 원금상환부담이 커져 추가 부실이 우려된다는 설명이다.

또 전세/매매 가격 비율이 상승함에 따라 소액의 주택담보대출만 있어도 전세보증금을 포함한 부채가 주택가격에 근접한다는 게 한은의 평가다. 주택담보대출이 있는 전세주택의 경우 전세보증금을 포함한 실질 LTV 비율은 71%로 전체 주택담보대출 평균 48%에 비해 크게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실질 LTV비율이 80% 이상인 전세주택 비중도 26%에 이르고 있다. 경매낙찰가율(올해 상반기 75%)을 감안하면 경매처분 시 낙찰가가 대출액과 전세보증금을 밑도는 전세주택이 상당수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주택소유주는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보증금에 대한 상환부담이 크고 세입자는 전세보증금 일부를 회수하지 못할 위험이 높아진 것이다.

◆ 자영업자 부채 430조·가구당 부채규모 1억원 육박

올해 상반기 가계부채 증가세는 둔화했으나 자영업자(개인사업자)와 저소득층 부채는 오히려 부실 위험이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3월 말 기준 자영업자 부채는 430조원 내외로 지난해 1월 보다 16.9%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가계부채 증가율(8.9%)의 두배에 달한다.

자영업자의 가구당 부채규모가 9500만원으로 임금근로자(4600만원)의 두배 정도이고 가처분소득대비 부채비율(219.1%)도 임금근로자(125.8%)를 웃도는 등 근로소득자 부채 등 여타 채무보다 경기상황 및 부동산가격 변동에 훨씬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

또 저소득층의 채무상환능력도 급격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신용등급은 우량하지만 소득 수준이 낮은 가계의 대부업 이용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저소득층의 비은행권에 대한 차입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연소득 2000만원 미만 차주의 가계대출 연체율은 2011년말 0.6%에서 2012년 8월말 1.1%로 상승했으며, 저신용등급(7~10등급) 차주 가운데 신용카드 대출 연체자 및 임대아파트 임대료 체납자도 증가하는 추세다.

◆ 기업 수익성 떨어지며 한계기업도 늘어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로 한계기업 수가 크게 늘어나고 한계기업의 재무건전성도 더 악화되면서 도산위험이 커지고 있다. 상장기업 중 한계기업 비중이 2010년말 14%, 지난해 말 15%에서 올해 6월말 18%로 크게 늘어났다. 중소기업의 한계기업 비중이 2010년말 17%에서 올해 6월말 21%로 늘어났을 뿐 아니라 대기업의 경우도 같은 기간 11%에서 15%로 급증했다. 장기간 불황에 대기업들도 맥을 못 추고 있는 것이다.

한계기업들의 재무상황은 단기부채가 늘어나는 등 더 악화되고 있다. 정상기업의 차입금 의존도는 2010년말 22%에서 올해 6월말 24%로 소폭 상승한 반면 한계기업은 같은 기간 35%에서 41%로 급등했다. 특히 한계기업의 경우 단기차입금이 큰 폭으로 증가해 부채구조가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올해 6월말 한계기업의 단기차입금 비중은 78%로 정상기업(42%)의 두배에 달했다.

가장 큰 문제는 대기업집단 계열사들까지 한계기업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건설, 전자, 철강, 조선 등의 업황부진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대기업집단 소속 한계기업 수는 2010년말 19개에서 지난해말 22개, 올해 6월말 23개로 꾸준히 늘고 있다.

◆ 세계경제·국내경제, 내년도 어렵다

한은은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재정건전성이 더 악화돼 유로지역 재정위기가 재부각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최근 유럽중앙은행(ECB)과 관련 국가의 적극적인 정책대응으로 유로지역 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다소 완화되고 있지만 유럽 재정위기가 다시 부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은은 이런 유로지역 위기 심화 가능성과 함께 미국의 급격한 재정긴축(재정절벽) 관련 불확실성이 세계경제의 하방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유럽 일본 등의 양적 완화에도 불구하고 선진국 경제가 회복되기 어렵고 신흥국 경제도 둔화되면서 세계경제의 성장을 견인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한은은 국내 경제에 대해서는 수출과 내수의 동반 부진으로 성장 모멘텀이 약화됐으며 유로위기 장기화, 중국의 성장세 둔화, 가계부채 누증에 따른 민간소비 회복 제약 등으로 하방리스크가 우세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