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좌석이 진화하고 있다. 값싼 항공 요금을 강점으로 내세운 신생 저비용 항공사들이 국내 노선은 물론 중국과 일본·동남아 등 단거리 노선까지 잠식하자, 기존 대형 항공사들은 좌석의 품질을 높여 차별화 전략을 펴고 있는 것이다. 항공사들은 일등석·비즈니스석에 이전보다 편안한 새 좌석을 도입하는 등 투자를 늘리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최근 업계의 가장 큰 화두가 '좌석의 첨단화'"라고 했다.
◇한 자리에 7억원짜리 항공 좌석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7월 국내 최초로 일등석 입구에 여닫이 문이 달린 '오즈 퍼스트 스위트'를 도입했다. 승객의 프라이버시를 위한 것이다. 여닫이문은 승객이 자유롭게 열고 닫을 수 있고, 신선한 실내 공기를 만들기 위한 통풍구도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3년간 개발한 '오즈 퍼스트 스위트'의 좌석 1개당 가격은 7억원.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 1채보다 비싸다.
이 좌석에선 팔걸이에 있는 터치스크린 버튼을 누르면 조명과 등받이의 높낮이 조절을 쉽게 할 수 있다. 업무나 휴식을 위해 방해받고 싶지 않을 때 버튼을 누르면 입구 표시등에 'Do not Disturb(방해하지 마세요)' 문구가 표시된다. 세계 최대 32인치의 기내 HD(고화질) 개인 모니터도 달려 있다.
대한항공의 초대형 여객기 A380 일등석인 '코스모 스위트'도 한 개당 가격이 2억5000만원에 이른다. 좌석 길이만 2m가 넘고, 좌석 너비도 기존보다 15㎝ 넓어진 67㎝로 넉넉하게 만들어졌다. 좌석 매트도 이음새가 없어 안방에 누운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최첨단 기능이 있다고 하지만 비행기 좌석이 이렇게까지 비싼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일등석과 비즈니석은 디자인 개발에서 실제 제작에 이르기까지 개별 항공사의 특성과 서비스 수준에 따라 맞춤형으로 제작된다. 대량 일괄 제작되는 것이 아니라, 소량 특별 제작되기 때문에 가격이 더 비싸지는 것이다.
또 불의의 사고가 발생할 경우 압력이 가해지거나 화재가 나더라도 좌석이 변형되지 않고 승객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강도와 방염(防炎) 등 특수 기능을 갖춰야 한다. 모든 항공기 좌석은 불을 12초간 대고 있다가 뗐을 때 불이 옮아붙지 않는지를 심사하는 '12초 버티컬 테스트'도 통과해야 한다. 이런 여러 기능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진다는 것이다.
◇항공 좌석 배치도 진화
좌석 배치 형태도 진화하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항공업계는 비싼 요금을 받는 비즈니스석의 최적 배치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예를 들어 180도 평평한 수평침대로 변신하는 비즈니스석 좌석을 놓으려면 기존의 일렬 배치는 불가능하다. 승객의 발을 앞좌석 의자 밑으로 밀어 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한 승객이 잠들어 있는 다른 승객 위를 넘지 않고 화장실에 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선 창조적인 배치법이 필요하다.
아시아나항공은 2010년 국내 최초로 비즈니스석인 '오즈 쿼드라 스마티움'에 지그재그식 좌석배열을 도입했다. 덕분에 모든 승객은 옆자리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화장실을 오갈 수 있다. 기존 B777 항공기의 32개 비즈니스석을 24개로 줄여 좌석 간격도 늘렸다. 아시아나항공은 현재 4대의 보잉 777항공기에 오즈 쿼드라 스마티움 좌석을 설치했고, 내년까지 8대로 확대할 계획이다.
델타항공은 기존의 2-2-2-열 좌석을 1-2-1열로 바꾼 좌석을 선보였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보도했다. 창가에 앉은 고객이 복도로 바로 나갈 수 있게 한 구조다. 좌석도 45도 정도 옆으로 틀어 공간을 최대한 활용했다. 객실 가운데 2인석은 A자 형태로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모든 승객이 옆 승객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기 좌석에 드나들 수 있는 방식이다. 델타항공은 2014년까지 모든 국제선 항공기의 비즈니스석을 이 구조로 교체할 계획이다.
에어뉴질랜드는 승객들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V자 모양으로 좌석을 배치했다. 서로 등을 대고 앉은 승객들은 쉽게 좌석을 드나들 수 있고, 승무원이 건네는 기내식도 바로 받을 수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승객 요구가 날로 높아지고 있어 항공 좌석의 진화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