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1970년대 불었던 제조업 붐이 잦아들면서 국내 곳곳에 폐공장들이 방치되기 시작했다. 일부 방치된 공장부지는 멀끔한 새 빌딩들에 자리를 내어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모두가 외면하는 공간이 됐다. 공장뿐만 아니다. 새마을 운동의 상징이었던 슬레이트 지붕도 시간이 지나면서 회색 도시의 흉물로 남게 됐다.
이 같은 현상은 유럽 등 서구사회에서도 볼 수 있다. 우리보다 먼저 산업화를 겪었던 서구사회도 산업화의 흔적인 폐공장은 오랫동안 골칫거리로 남아 있었다.
사람들이 떠나버린 죽은 도시를 살리기 위해 고심하던 이들은 공장들과 함께 축적된 공간의 역사를 지워버리는 대신 정체성으로 삼기로 한다. 화려한 새 건물 대신 폐공장 건물을 활용하는 그들의 시도는 무모해 보였으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①테이트 모던
테이트 모던은 런던 템즈 강변의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를 리모델링해서 만든 미술관이다. 노후화된 건물과 폭등한 기름값의 영향으로 1981년 폐업한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는 20년간 흉물스럽게 방치되면서 주변 지역을 슬럼화시키고 있었다. 런던시는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 국립미술관의 전시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곳에 주목했고, 발전소를 헐고 새 건물을 짓자는 유명 건축가들의 제안 대신 폐발전소를 리모델링하자는 헤르조그(Herzog)와 드 므롱(De Meuron)의 설계안을 채택했다. 발전소 건물이 유명한 건축가 길버트 스콧 경의 작품이라 철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거친 벽돌과 굴뚝을 그대로 보존한 테이트 모던은 그와 어울리는 실험성 가득한 전위적 작품을 전시해 독창적인 문화공간을 창출해냈다. 이를 통해 한해 많게는 500만명의 관람객을 끌어들이면서 런던의 명물이 된 테이트 모던에는 현재 2016년 완공목표로 증축 프로젝트가 시행되고 있다.
②독일 에센시
독일의 에센시는 인구 약 60만명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중소도시로, 독일 최대의 탄광도시이자 중공업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석유산업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개편되면서 석탄산업은 경쟁력을 잃게 되고, 도시 또한 활력을 잃었다. 에센시 정부는 쇠퇴하는 도시를 살리기 위해 고심하던 중 독일 호황기를 함께 누렸던 뒤스부르크의 변신에 주목했다. 녹슨 제철소 공장을 생태공원으로 발전시켜 성공을 거둔 뒤스부르크의 사례를 본받아 산업건축물은 남겨두되 쓰임을 달리하는 방식으로 접근한 것이다. 거대한 고철 건축물들과 예술의 융합은 에센시를 세계적인 디자인상인 Red Dot Design Award를 시상하는 디자인 성지로 탈바꿈시켰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졸페라인(Zollverein) 탄광을 개조해 만든 뮤지엄과 아트센터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중의 하나이다.
③ 뉴욕 하이라인
산업혁명과 함께 활기를 띤 맨해튼의 무역산업은 세계각지의 사람들을 뉴욕으로 끌어들였다. 기존의 맨해튼 교통시스템으로 이 인구유입량을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하이라인은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1930년대 맨해튼 서쪽지역 1.5마일에 걸쳐 설치된 고가철도이다. 하지만 1950년대에 들어 맨해튼의 산업?운송구조는 급격하게 변화했고, 하이라인은 지상 10미터 방치된 거대 고철덩어리로 전락했다. 1990년대 말 이를 철거하려는 개발업자들과 맨해튼의 상징을 지키려는 첼시 예술인 공동체간에 치열한 공방이 오갔고, 논쟁 끝에 하이라인은 혁신적인 도시재생을 시도해볼 수 있는 실험의 장으로 탈바꿈했다. 도심의 순환을 도모할 수 있는 하이라인의 기본골격은 그대로 유지하고 다른 교통수단과 분리된 보행자들만의 보행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하이라인 리모델링의 기본 아이디어이다. 2006년 공사에 착수해 2009년,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일부 개장했다. 하이라인 상부에 조성된 생태공원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점철된 맨해튼에 새로운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미국 내 대표적인 잡지인 ‘트래블&레저’가 세계의 랜드 마크 10위로 선정했을 만큼 시민의 호응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