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회장과 일가 등 '큰손'의 서울 북촌 한옥마을 투자가 이어지면서 북촌 일대 한옥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다.
큰손들은 실제 거주 목적보다는 세컨드 하우스의 개념으로 한옥을 사들이는 것으로 분석된다. 큰 손들의 투자가 이어지면서 주택시장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북촌 한옥마을의 시세는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 꼬리를 무는 회장님들의 북촌(北村) 사랑
북촌 한옥마을은 서울 종로구 계동·가회동·삼청동 일대 한옥 밀집지역을 말한다. 한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최근 한옥 마을에는 대기업 회장들의 주택 마련 붐이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다. 신 회장은 작년 12월 9일 가회동 93-3번지 대지면적 482.6㎡(145.8평), 건물면적 265.7㎡(80.3평)의 한옥을 45억원에 샀다. 신 회장의 한옥은 99년의 역사를 가진 조선 말기 한옥 백인제가(家)와 규모가 엇비슷하다. 제동 초등학교 건너 편 가회동 주민센터와 정독도서관 사이에 있다. 인근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안국역 사거리에서 감사원으로 이어지는 가회로 근처라 북촌에서도 교통이 편리한 지역”이라고 말했다.
대림산업##이해욱 부회장의 장모인 구훤미씨도 작년 7월 종로구 계동 76번지 지상 3층 지하 1층 건물을 매입했다. 해당 건물은 리모델링을 통해 최근 상점들이 입점했다. 인근 공인중개사는 “평당 5500만원에 거래, 약 70억~80억원에 매매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씨도 북촌에 한옥을 두 채 가지고 있다. 홍씨는 나란히 붙은 가회동 33-35번지와 33-36번지를 갖고 있다. 2009년 33-36번지를 먼저 사들였고, 1년 후 33-35번지를 매입했다. 가회동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주택이 나란히 붙어 있고, 허름한 것으로 보아 두 채를 터서 리모델링을 할 것으로 보인다”며 “한옥마을은 주로 비성수기인 겨울에 리모델링이 많이 진행된다”고 말했다.
한진해운의 최은영 회장도 북촌 한옥마을의 유명인사다. 최 회장은 가회동 1-131번지 주택을 2011년 4월 10억원에 매입했다. 이 주택은 현재 게스트하우스에서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한 리모델링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북촌 사랑은 한화그룹이 유별나다. 김승연 회장과 그의 동생 김호연씨, 장남 김동관씨 등 한화 일가는 이 지역에 총 1만6848㎡(5096평)의 땅을 보유하고 있다. 김승연 회장은 가회동 1-11번지 1655.3㎡(500평) 규모의 주택을 본인 이름으로 갖고 있다. 김동관 한화솔라원 실장은 삼청동 35-22번지 주택과 가회동 임야 2620㎡(792평)를 증여받아 보유 중이다.
한화건설은 대표 한옥마을 가회동 33번지와 가회동 11번지 사이의 땅을 사들여 한옥 풍 고급주택 단지로 조성했다. 한화건설이 보유한 땅은 가회동 1-10 등 총 1만1637.8㎡(3520평) 규모다. 인근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한화가 외국인 임대 하우스를 조성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화그룹에 손님이 방문하면 김승연 회장 집 근처인 이곳에 손님들이 머무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재벌 일가의 과도한 한옥 사랑에 공시지가도 강세
회장님 등 큰손을 통해 한옥이 비싼 값에 거래되다 보니 북촌 일대 공시지가도 매년 크게 오르고 있다.
서울시 부동산 정보광장을 통해 종로구 계동, 가회동, 삼청동 일대 실 거래량을 조회해 본 결과 지난 2010년에는 26건에서 2011년 48건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가 올해 3분기 10건으로 줄었다.
특징적인 점은 해당 실거래가가 대부분이 6억~7억원을 넘어 많게는 34억원에도 거래됐다는 점이다. 건물면적 기준으로 실거래 가격은 2010년 3.3㎡당 2100만원 수준에서 2011년 2800만원대로 올라섰다. 올해 들어서는 2600만~2700만원 선을 기록 중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 5월 강남구 역세권 지역 아파트 값은 3.3㎡당 2930만원이었다.
거래 물건이 많지는 않지만, 거래 가격이 높다 보니 정부가 매년 1월 1일 발표하는 북촌의 표준지 공시지가도 상승세다.
가회동 1-38번지 한옥지대의 경우 2010년 1㎡당 329만원에서 2010년 337만원, 올해 360만원을 기록했다. 각각 2.4%, 6.8%씩 상승했다. 삼청동 35-77 한옥지대는 2010년 293만원에서 2011년 300만원으로 2.3% 올랐지만, 올해는 321만원으로 7% 급등했다.
종로구 계동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한옥도 주택 불경기 여파에 거래가 잘 안 된다”며 “하지만 거래되는 물건이 10억~15억원 수준의 비싼 물건이라 자연스레 시세도 오름세”라고 말했다.
북촌에서 20년 이상 살았다는 한 주민은 “북촌은 돈 많은 사람들의 투자가 이어지면서 10억원 정도 없으면 들어오지 못하는 곳으로 동네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며 “집을 매입해 싹 뜯어고쳐 정취도 많이 사라졌고 세컨 하우스 개념으로 집을 사두다 보니 빈집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 영세한 임대 공방들 부담 커질 듯
북촌 한옥마을에는 예술 장인들이 운영하는 21곳의 공방이 있다. 옻칠 공방, 민화공방, 자수공방 등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문화 기술을 소개하고 관련 제품을 전시하는 곳이다.
서울시와 SH공사는 보유한 한옥을 해당 공방들에 공시지가와 감정평가액을 더한 재산평정가격의 1000분의 14 수준으로 임대해주고 있다. 하지만 최근 한옥 가격이 올라 공시지가가 높아지면서 임대료도 오르는 추세다.
한 공방 관계자는 “한옥 가격이 비싸지다 보니 월 임대료도 33만원에서 52만원으로 올랐다”며 “계약기간 3년이 끝나고 나면 임대료가 더 오를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