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우 한양대 특임교수·경영학 박사

우리나라의 커피 수입량은 연간 13만t, 금액으로 7억달러가 넘는다.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제활동 인구를 기준으로 한 명이 하루 평균 1.5잔의 커피를 마신다고 한다.

봉지 커피가 일상화된 것이 주원인이라는데, 이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커피업체 간 경쟁이 치열하다. 최근 이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한 회사의 광고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고 있다. 유명 연예인들을 등장시켜 법정 공방을 벌이는 내용의 광고인 "증거 있습니까?"다. 봉지 커피를 고급 품종인 아라비카 원두가루를 사용해 만들었다고 주장하며, 그 증거로 커피잔에 찌꺼기가 남았다는 점을 든다. 사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잔에 남은 찌꺼기가 불순물로 보여 괜히 찝찝하게 여겨질 수 있고, 미관상으로도 좋지 않다. 하지만 이 회사는 제품이 지닌 약점(찌꺼기)을 오히려 제품의 강점(고급 원두가루 사용)을 알리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부정적일 수도 있는 찌꺼기로부터 고급 원두커피로의 반전을 보면서 필자는 세월의 시계를 과거로 돌려봤다.

고급 신제품에 뜻밖의 소비자 불만

국내 하이파이(hi-fi) 오디오시장의 태동기였던 30여년 전, 삼성이 하이파이 스테레오 시장에 진출할 때의 이야기다. 이때까지만 해도 국내 가정용 오디오 시장은 별표나 독수리표 같은 전축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 제품들은 튜너, 앰프, 카세트데크, 턴테이블, 스피커가 한꺼번에 붙어 있는 일체형으로 전문가용 제품은 아니었지만, 웬만한 가요나 복사판 레코드를 듣는 데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당시 서울 세운상가나 충무로에서는 오디오 마니아를 상대로 미8군 PX(군부대 매점)에서 흘러나온 해외 유명 하이파이 브랜드가 조금씩 거래되고 있었는데, 튜너와 앰프 또는 리시버로 각기 나뉘어 팔리는 분리형 제품이었다.

당시 삼성의 신규 오디오사업 기획을 맡고 있던 필자는 '소노라마(Sonorama)'라는 스테레오 브랜드를 만들고, 첫 제품으로 채널당 55W의 하이파이 스테레오를 국내 최초로 출시했다. 하지만 시장의 첫 반응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우리가 보기에는 외국 제품에 비해 손색이 없는 음질과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는데, 국산 고급 오디오를 외면하는 소비자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일러스트=오어진 기자 polpm@chosun.com

제품을 널리 알리기 위해 광고회사와 광고 시안을 검토하던 중에 우리는 뜻하지 않은 소비자의 불만에 주목하게 됐다. 전원을 켜면 음악이 바로 나오지도 않고, 심지어 음악이 나오기 전에 시계 초침 소리 같은 잡음이 난다는 불만이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비싼 돈을 주고 구매했으니 좋은 음질은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런데 전원을 켰을 때 바로 음악이 나오지 않고 소음까지 난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소비자 불만을 광고에서 장점으로 반전시키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제품의 불량이 아니라 당시 고급 하이파이 제품의 공통적인 특성이었다. 보통의 저(低)출력 일반 오디오와는 달리, 고출력 하이파이 오디오는 높은 출력을 필요로 하다 보니 갑자기 한꺼번에 많은 전류가 흘러서 앰프의 회로가 손상되거나 스피커가 망가질 수도 있다. 이를 방지하는 릴레이 회로를 넣었는데, 이 때문에 전원을 넣은 다음 음악을 듣는 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계 초침 같은 '딱' 소리는 릴레이 회로가 작동되는 소리로 당시 외국 고급 오디오제품에서도 감지되는 현상이었다. 그러나 저출력의 전축에 익숙해 있던 대부분의 소비자는 이것을 품질의 문제로 간주한 것이다.

고출력 제품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인데 이런 제품에 익숙하지 않은 고객에게는 약점으로 비치니, 억울하기도 하고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소비자들에게 이런 사정을 잘 납득시킨다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소비자의 불만을 반전시켜 광고에서 고급 오디오의 특성으로 표현해 보자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본 것은 큰 진전이었다. 그 깨달음 끝에 만든 신문 광고의 카피는 이랬다.

"좋은 음악을 들으시려면 3초는 기다리셔야 합니다. 삼성 소노라마 3500은 과전류로부터 여러분의 소중한 오디오 기기를 보호하기 위한 릴레이 회로가 부착되어 있어 스위치 작동에서 음악이 나올 때까지는 3초가 걸립니다."

소비자들의 불만이었던 기다림의 3초를 다른 저출력 오디오 제품과 차별화하는 고급 하이파이 오디오의 상징으로 인식시키며 성공적인 시장 진입에 탄력을 받을 수 있었다.

소비자 불만에 무조건 보완만 하기보다 오해인지를 따져보라

기업이 소비자의 의견에 귀 기울여서 제품의 문제를 파악하고 개선해 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거론된 문제점이나 불만을 무조건 보완하거나 변명하려고만 한다면 오히려 제품의 장점을 무색하게 만드는 일이 될 수 있다.

그것이 정말 제품이 지닌 하자(瑕疵)여서 개선이 시급한 문제인지, 아니면 소비자의 정보 부족으로 인한 오해이며 상황에 따라 장점으로 반전시킬 수 있는 것인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해 내어야 한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 심지어 소비자의 기대를 앞선 뛰어난 것까지도 소비자의 불만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잘 대응하면 더 효과적으로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다.

더 나아가 진정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는 약점까지도, 생각을 바꾸면 강점으로 만들거나 새로운 제품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다. 제품이나 서비스가 지닌 문제나 소비자의 불만에서 새로운 기회의 창을 보는 슬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