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울산 S-Oil 정유 공장 부두에 5만2450㎘ 크기의 탱크를 실은 대형 유조선이 들어왔다. 탱크가 텅 비어 있던 이 배는 S-Oil이 정제한 총 33만배럴 규모의 경유를 채우고 싱가포르를 향해 출항했다. 33만배럴은 국내에서 하루에 소비되는 원유량(약 200만배럴)의 16%에 해당하는 양으로, 승용차 100만대에 한꺼번에 주유할 수 있다.
이처럼 S-Oil 울산 공장의 3개의 부두에는 매일 평균 3척씩 한 달에 100여척의 유조선이 석유제품을 받아가기 위해 줄을 선다. S-Oil은 지난 1분기 생산된 석유제품의 60.2%를 수출한 데 이어, 2분기에도 생산량의 62.6%를 해외에 공급했다.
상반기 수출액, 지난해보다 11% 올라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석유 수출국
대표적인 내수 산업으로 꼽혀왔던 정유 산업이 수출 효자 산업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최근 고유가 탓에 일반 소비자 사이에서 '정유사=주유소'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정유사 매출 구조를 보면 사실상 수출 주도형 산업으로 탈바꿈 한 지 오래다.
업계 1위인 SK에너지는 작년에 1억7205만배럴의 석유제품을 수출하며, 사상 최대 수출 물량을 경신했다. GS칼텍스 역시 지난해 연간 284억달러의 원유를 수입해 237억달러 규모의 석유 및 석유화학제품을 수출했다. 원유 수입액의 83.5%를 수출로 회수한 셈이다. 이 회사는 2001년까지만 해도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수출 비중이 22%에 그쳤지만, 2006년 처음으로 수출 비중 50%를 기록한 뒤 매년 매출액 대비 수출 비중이 50%를 넘고 있다. S-Oil은 지난해 수출을 통해 사상 최대인 20조4375억원을 벌었다. 생산물량의 65%를 해외시장에다 판 것이다. 이처럼 정유 업체들이 수출에 매진한 덕분에 올해 상반기 석유제품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1.1%나 증가했다. 이는 수출액이 15.7% 증가한 자동차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상승세다. 선박·휴대전화 등 전통의 수출 품목들이 두 자릿 수 넘는 비율로 수출액이 감소한 것과는 정반대 양상이다.
전체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위상이 달라졌다. 상반기 석유제품 누적 수출액은 271억7200만달러로 같은 기간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2752억달러)의 9.9%를 차지했다. 1월~6월 무역수지 흑자액이 불과 107억달러였던 점을 감안하면 석유제품 수출이 무역 흑자 유지에 든든한 버팀목이 된 셈이다. 이는 정유업체들이 1980년대 이후 '무자원 산유국'을 목표로 꾸준한 해외 유전 개발에 나서는 한편, 국내에 고도화 시설을 잇달아 건설한 덕분이다. 고도화 시설은 값싼 벙커C유를 정제해 값비싼 휘발유나 경유로 재생산하는 장치라는 점에서 '지상 유전'으로 불린다. SK이노베이션과 S-Oil은 울산, GS칼텍스는 전남 여수, 현대오일뱅크는 충남 대산에 각각 초대형 고도화 시설을 구축했다.
해외 인프라 건설 등 新시장 개척 나서
◇전력 인프라 수출도 미래 성장동력
LS전선은 지난 6월 국내 최초로 프랑스 전력청이 발주한 225㎸ 초고압 케이블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했다. 프랑스 전력청은 세계 2위 규모 전력회사로, 프랑스뿐 아니라 세계 각국을 상대로 전력망 설치와 운용에 대한 컨설팅을 제공한다. 그만큼 사업자에 대해 까다로운 품질 기준과 엄격한 공사관리를 요구하기로 유명하다. LS전선은 2010년 처음 프랑스 문을 두드린 이래 세 번만에 대형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했다.
LS전선처럼 최근 해외 전력인프라 프로젝트에서 굵직한 규모의 공사를 따내는 사례가 늘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효성은 송·배전 분야 기술력이 두드러진다. 현대중공업은 아예 대규모 시장이 있는 러시아에 고압차단기 공장을 건설했다. 이 공장에서는 연간 110∼500kV급의 고압차단기 250여대를 생산할 예정이다. 2010년부터 러시아 정부가 전력시스템 현대화 정책을 펴자 전력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하고 현지 생산 체제를 갖추기 위한 투자였다.
효성은 노후 전력설비 교체 수요가 많은 미주 지역은 물론, 아직 전력 설비가 미비한 신시장을 동시에 공략 중이다. 효성은 2010년 4월 국내기업 최초로 카타르 송·변전 시장에 진출하면서 132㎸ 변전소 3기 등 총 5기의 변전소 수주 계약을 체결했다. 8월에는 알제리 전력청으로부터 400㎸ 변전소를 비롯한 총 4기의 변전소 건립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등 신시장 점유율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에너지 인프라 업체들의 해외 진출 경향은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도 두드러진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관련 수출액은 2007년 7100억원 정도였지만, 2011년에는 4조6500억원으로 6.6배 늘어났다. 같은 기간 국내 고용인원도 3600명 수준에서 1만5000명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비록 우리나라가 원유·가스 등 자원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신재생에너지는 태양·바람을 이용하는 만큼 우리나라도 얼마든지 세계 시장 진출을 타진할 수 있다. 특히 태양전지는 반도체와 생산기술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국내 업체들의 기술력이 앞서가고 있다.
정부도 자금지원을 통해 민간 업체들의 신재생에너지 사업 확장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6월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만 연간 수출 8조6100억원, 민간 투자 3조5500억원, 고용 1만6000명을 달성하겠다고 목표를 밝혔다. 이를 위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연구개발(R&D) 사업에 총 3737억원을 지원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