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식품업체 차장인 김모(45)씨는 1억47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 가게를 차려 사업을 하던 아내에게 사업 자금을 조달해 준 게 화근이 됐다.

은행 3곳, 카드사 2곳, 캐피탈사 2곳, 저축은행 2곳에서 빚을 냈다. 하지만 불경기 탓에 아내의 사업은 망했고, 올해 초 가게 문을 닫았다. 이후 빚 상환 부담은 고스란히 김씨의 몫이 됐다. 하지만 월 400만원 정도의 김씨 소득으론 감당이 안 되는 빚이었다. 결국 대출금을 연체하기 시작해 못 갚은 이자가 2000만원으로 불어났고, 신용불량자가 됐다. 그는 현재 소득으론 도저히 빚을 갚을 수 없다고 판단해 이달 초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아가 개인워크아웃(채무재조정·키워드)을 신청했다.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김씨처럼 중산층에 속하는 채무자들이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예전에 개인워크아웃은 주로 저소득층 다중(多重) 채무자들이 신청했었다. 웬만한 소득이 있는 중산층까지 빚을 갚겠다는 의지를 접기 시작하면 우리나라 가계부채 문제는 한층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중산층까지 위협하는 과중한 빚

28일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개인워크아웃 신청자 중에 월소득 150만원 이하인 사람의 비중이 2010년 88%에서 올해 상반기에는 82%로 줄어들었다. 반면 월소득 150만원을 넘는 사람들의 비중은 12%(2010년)→15%(2011년)→18%(2012년 상반기)로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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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 가족 최저 생계비(149만5550원)에 해당하는 150만원보다 수입이 많은 사람의 개인워크아웃 신청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가계부채 위험지대'가 저소득층을 넘어 중산층까지 확산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중산층 신청자가 늘다 보니 신청자의 부채 규모도 커지고 있다. 개인워크아웃 신청자 중 부채가 5000만원이 넘는 사람의 비중은 2010년 8%, 2011년 9%였는데 올해 상반기엔 10%로 늘어났다. 반면 빚이 3000만원 이하인 사람들은 2010년 78%였지만 올 상반기에는 75%로 감소했다.

신용회복위원회 관계자는 "소득이 웬만큼 되는 사람들이 은행에서 대출 한도만큼 빚을 내고도 부족해 제2금융권에서 추가로 돈을 빌렸다가 연체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창균 중앙대 교수는 "불경기 탓에 소득은 줄고 부동산 경기 하락으로 자산가치도 줄고 있어서 빚을 감당하지 못하는 중산층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법원 개인회생 신청자도 급증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사람들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개인회생은 빚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된 개인이 법원이 마련한 계획에 따라 부채를 청산하는 제도인데, 개인워크아웃과 마찬가지로 일정 소득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개인회생 신청자는 올 들어 6월까지만 1만80명에 달했다. 개인회생 신청은 2008년 5763명이었다가 2009년 8699명, 2010년 8908명, 2011년 1만3806명으로 계속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득이 없는 사람이 신청하는 개인파산과 달리 일정 소득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개인워크아웃이나 개인회생 신청이 늘어나는 것은 정상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들까지도 불황에 따른 타격을 입기 시작한 것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장은 "저성장 기조가 오래가면서 경제 회복이 더뎌지자 힘에 부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포기하는 중산층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금융회사들이 직장 있는 사람이라고 마이너스 대출을 남발했다가 부실을 키운 후유증이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워크아웃

금융회사 대출금을 3개월 이상 연체하고 있는 신용불량자에게 채무 감면, 대출 금리 인하, 상환 기간 연장 등의 방법으로 빚 부담을 줄여주는 제도. 빚이 5억원 이하이고, 일정한 소득이 있어 빚을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신용불량자가 신용회복위원회에 신청하면 위원회가 채권자인 금융회사들과 협의해 시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