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22일 한국 가계부채를 조명했다. FT는 "한국의 가계부채가 위험 수준에 도달했다"며 "작년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64%에 이르며, 이는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초기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FT는 4만달러(4500만원)의 대출을 받아 중국집을 열었다가 매출 부진으로 불어나는 빚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문을 닫은 오진석(52)씨의 사례를 들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후 한국 정부가 대기업 대출을 줄이도록 유도하면서, 은행들이 수익을 위해 가계대출자들에게 몰렸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 유럽과 같이 한국도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로 대출을 늘려 부동산을 구입한 사례도 늘었다"며 "하지만 최근 4년간 선진국에서는 부채 축소(디레버리징)가 일어난 반면 한국에선 더 늘었다"고 덧붙였다.

FT는 "자본이 충분한 한국 은행들이 구조적인 어려움에 빠질 가능성은 적지만 가계부채 부담은 수출 의존도를 줄이려는 정부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한국은행은 올해 상반기 소비가 1.4% 증가하는 데 그친 배경을 가계대출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지난해 한국은행은 대출을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꾸준히 올려왔지만 올들어 분위기가 바뀌었다. 지난달 깜짝 기준금리 인하도 대출자들의 높은 이자 부담을 고려한 것이라고 FT는 추정했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도 언급했다. 대출자의 미래 소득과 배우자 순자산도 인정해줘, 대출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 골자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FT에 "가계부채 증가는 가장 큰 위험 중 하나라는 점은 알지만 정치인들은 대출을 확장해 사람들이 주택매입에 나서도록 요구하고 있다"며 "결국 절충안을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FT는 "청년층 80%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부모님들이 대출을 받아야 하거나, 노동인구 3분의 1이 영세 자영업을 위해 대출을 받는 상황을 감안할 때 한국의 가계부채는 보다 광범위하고 구조적인 문제를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