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트야지트 다스 지음|이진원 옮김|440쪽|2만2000원|알키

영국 문명비평가인 토인비가 사용한 휴브리스(Hubris)라는 말은 그리스어에서 비롯됐다. 그리스 비극에서 휴브리스는 자신의 능력을 맹신한 나머지 스스로를 우상화하며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간을 묘사할 때 쓰인다. 이들은 크게 노한 신의 보복(Nemesis)으로 결국 파멸에 이르고 만다.

금융 파생상품과 위험관리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저자는 인류가 돈을 숭배하기 시작하면서 현대판 휴브리스가 재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인류는 사회의 윤활유 역할을 기대하며 돈과 금융을 창조했지만 이제 그 창조물들이 우리의 삶을 재창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흔히 스카이다이빙, 스노보딩, 빙벽등반 등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극한의 짜릿함을 즐기는 스포츠를 익스트림 스포츠라고 한다. 저자는 ‘익스트림 머니’(extreme money)라는 단어를 통해 미래를 담보로 이뤄지는 금융의 위험천만한 일화들을 다루고 있다.

현대 금융은 부채(負債)의 결정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데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미국의 뉴웨이브 밴드인 토킹 헤즈(The talking heads)는 ‘생(生)에 단 한번’(Once in a life time)이라는 노래에서 묻는다.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큰 자동차와 아름다운 집과 멋진 부인을 가졌습니까?” 답은 부채였다. 과거에는 숨겨야 할 것으로 여겨졌던 부채는 현대인들의 필수 생활 양식이 됐고, 근검보다는 낭비가 미덕이 됐다. 은행들도 한몫 했다. 투자자들을 상대로 대출을 늘려 온 은행은 금리 차이로 몸집을 키웠다.

그런 과정에서 각종 파생상품이 생겨났다. 많은 금융 상품들은 투자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설계됐고, 투명성은 온데 간데 없어졌다고 저자는 꼬집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채와 트레이더들도 알기 어려운 파생상품은 결국 금융위기라는 이름으로 표출됐다. 하지만 은행들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누군가 은행을 구제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평생 모은 돈이 위험해진다”는 주장으로 정부의 혜택을 받아 왔다. 저자는 “은행의 변명은 사람을 죽인 뒤 아편에 중독된 탓에 그런 짓을 저질렀다며 선처를 호소하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그의 결론은 다소 비관적이다. 돈이라는 잘못된 우상을 숭배한 현대판 휴브리스는 오랜 기간 일방통행을 해 왔고, 이제 되돌아가기엔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책이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익스트림 머니는 경제를 오염시킨다”는 것과 “위험한 우상에 대한 성찰은 계속돼야 한다”는 것, 두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