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업이 업무 환경을 컴퓨터 중심으로 바꿔놓고 비즈니스의 디지털화(digitalized)가 이뤄졌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저 디지털 느낌을 내는 것(feeling digital)일 뿐입니다."
서울 삼성동의 한 호텔에서 만난 마크 맥도널드(McDonald·사진) 가트너 그룹 부사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많은 기업이 디지털 착시 현상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트너는 디지털 컨설팅 및 시장 조사 분야에서 세계 1~2위를 다투는 회사로, 맥도널드 부사장은 가트너의 연구부문(가트너 이그제큐티브 리서치) 대표직을 맡고 있다.
맥도널드 부사장은 많은 기업이 디지털 기반으로 비즈니스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그냥 아날로그 방식을 그대로 디지털에 옮겨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2000개가 넘는 기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기업에 던진 질문은 '회사의 디지털화가 얼마나 진행됐느냐'는 것. 이 기업들의 업무 과정 중에 디지털로 처리가 되는 비중은 평균 58%에 달했지만, 실제로 디지털 자원을 통해 버는 돈은 전체 매출의 28%에 불과했다. 그는 진정한 디지털화란 "디지털 자원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와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라며 "디지털을 통해서 돈을 벌지 못하면 디지털화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많은 기업이 디지털 느낌을 내는 수준에서 멈춘 이유에 대해서 맥도널드 부사장은 "진정한 디지털화가 인제야 시작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디지털 자원을 통해 기존에 없던 가치를 만들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려면 일정량의 데이터가 쌓여야 한다. 1~2년 전까지만 해도 이전의 아날로그 자료를 디지털로 변환하는 데 급급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다른 이유로 '스마트 기술'의 발전과 '빅데이터 처리 기술'을 꼽았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누구나 손안에 인터넷을 들고 다니고, 각종 센서를 갖게 됐다. 또 기존에는 감당할 수 없었던 큰 데이터를 처리해 새로운 자료를 만들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성공적인 디지털화의 예로 네덜란드의 은행 '라보뱅크'를 들었다. 이 은행은 지점 직원 대부분이 자택에서 근무하거나 고객이 있는 곳으로 출근한다. 디지털화를 통해 일이 줄어든 만큼 창구에서 자리를 지키지 않고 직접 고객을 찾아가도록 한 것이다. 또 다른 예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어린이 병원. 이 병원은 환자 정보와 진료 정보를 디지털화해서 잘못된 진료가 이뤄질 경우 알람이 울리도록 해, 오진 발생률을 절반 이하로 낮췄다.
맥도널드 부사장은 "진정한 디지털화는 이처럼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며 "시장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디지털 느낌을 내는 데 만족해서는 혁신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