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최근 청각장애인 국내 1호 박사인 오영준(37)씨를 채용했다. 오씨는 숭실대 미디어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삼성전자에서 장애인과 노약자들이 더 편하게 전자제품을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그는 한 살 때 사고로 청각과 말하기 능력을 모두 잃어버렸지만 독학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웠다. 그는 필담(筆談)을 통해 "확고한 신념과 열정만 있으면 누구에게든 기회는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다. 삼성전자는 지난 1일 해외 봉사활동을 하느라 연세대 경영학과를 8년 만에 졸업한 '봉사의 여왕' 주민서(27)씨를 채용했다. 또 해군사관학교 출신의 여성 장교 2명도 채용했다. 삼성의 봉사경험자 특채와 여성장교 채용 역시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전자 원기찬 인사팀장은 "앞으로도 이들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과 특기를 갖춘 인재를 발굴하는 데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채용에 혁신의 바람이 불고 있다. 성별·학력 등의 차별을 철폐하는 소극적 차원을 넘어서 다양한 경험과 특기 소유자, 그리고 소외된 계층에 적극적으로 기회를 부여하는 사회적 채용이 확산되고 있다. 고졸자에게 대졸자와 똑같은 대우와 기회를 보장하는 고졸 공채도 확대되고 있다.

스펙보다 창의성·도전정신 중시

최근 채용의 특징은 학력이나 어학점수 등 스펙의 비중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면접에서는 대부분 대기업이 지원자의 학력이나 어학점수 등을 가리고 면접 점수만으로 응시자들을 평가하고 있다. 앞으로는 인재의 다양성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가 되는 만큼 스펙보다는 창의성과 다양한 경험, 도전정신을 더 중시한다는 이야기다.

올해 초 SK텔레콤에 입사한 허재석(28)씨는 2010년 5월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것과 4년간 이벤트용 영상을 제작해주는 벤처기업을 운영해본 경험 덕분에 합격한 케이스다. 그는 "(면접 임원들이) 7명의 대원과 함께 50일 가까이 에베레스트 등반을 한 경험과 팀워크를 높게 평가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삼성도 이처럼 톡톡 튀는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 디자인·소프트웨어 직군 등에 한해 서류전형·필기시험의 절차를 모두 없애고 최종 면접만으로 채용하고 있다. KT는 서비스·현장마케팅 등에 대해 대졸 이상이었던 응시자격을 철폐, 고교 졸업장만 있으면 누구든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지방대 출신과 장애인 채용도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SK그룹은 올해부터 전체 신규 채용의 30% 이상을 지방대 출신으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삼성그룹은 여성 채용 비중을 30% 이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LG이노텍은 올해 처음으로 전국 7개 사업장에서 장애인 공채를 실시했다.

대세로 자리 잡는 고졸 공채

삼성·SK·한화 등은 올해 처음으로 고졸 공채를 도입했다. 삼성그룹은 최근 당초 예정보다 100명 많은 700명을 고졸 공채로 뽑았다. 한화그룹도 500명을 고졸 공채로 뽑고 채용을 전제로 한 고졸 인턴도 700명을 뽑을 계획이다. SK그룹 역시 250여명을 고졸 공채로 채용할 방침이다.

전체적인 고졸 채용 규모도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전경련에 따르면 올해 대기업의 고졸 사원 채용 규모는 4만1000명으로 작년에 비해 10%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8년 만에 그룹 차원의 고졸 생산직 공채를 실시하고, LG그룹 역시 올해 신규 채용 규모 1만5000명 중 5700명을 고졸 인력으로 채용할 계획이다.

서울대 김성수 교수(경영학)는 "대기업의 채용 방식이 바뀌어야 성적 일변도의 한국 교육 방식도 바뀔 수 있다"며 "그런 점에서 대기업의 채용 변화는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