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 아파트 단지는 서울시 정책하고 별 상관이 없어요. 그런데도 집주인들이 모두 불안해하고 가격도 슬금슬금 떨어져요. 불안 심리가 확 퍼진 겁니다."
최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인근 A공인중개사무소에는 거래는 거의 없지만, 문의 전화는 하루 4~5통씩 꾸준히 걸려온다. "값이 얼마나 떨어졌느냐" "은행 이자 내느라 버티기 힘들다"는 등 집주인들의 불안감이 담긴 상담 전화다. A공인중개사무소 김모(57) 사장은 "장사도 안 되는데 매일 우울한 전화만 받다 보니 나까지 무기력해지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지난달 재건축 소형주택 비율확대 방침을 밝힌 뒤 가뜩이나 침체에 빠져 있던 강남 재건축 시장이 더 움츠러들고 있다. 서울시의 방안은 재건축 때 60㎡ 이하 기존 소형주택의 절반을 소형으로 짓도록 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 방안은 소형주택이 많은 강남구 개포주공·시영아파트에만 해당하는 것이지만, 다른 재건축 아파트까지 불똥이 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강남 재건축
일부에선 강남 재건축 아파트 시장의 침체가 작년 10월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이후 과격한 주택정책을 쏟아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강남 재건축은 이미 지난해 3월부터 침체에 빠졌다. 부동산정보업체 '닥터아파트' 조사에 따르면 서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값은 지난해 3월 이후 12개월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다. 이 기간 평균 7.63% 하락했다. 강남구가 10.83%, 강동구 9.46%, 송파구 7.92%, 서초구 3.36% 각각 하락했다.
문제는 지난 2월 서울시가 재건축 소형비율 확대 방안을 밝힌 이후 하락세가 더욱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주 강남·강동·서초·송파 등 강남권 4개구 재건축 아파트의 가격은 평균 0.43% 하락해 지난해 12월 이후 14주 만에 가장 큰 폭의 하락세를 기록했다. 강남구가 0.62% 떨어진 것을 비롯해 강동구(-0.6%), 송파구(-0.5%), 서초구(-0.12%)도 큰 폭으로 내렸다. 이영호 닥터아파트 리서치연구소장은 "그렇지 않아도 침체돼 있던 강남 재건축 시장에 서울시가 확실하게 못을 박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재건축 하락 엇갈린 반응
최근 재건축 아파트 시장의 위축을 둘러싸고 상반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우선 강남 재건축은 투기 목적으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반인 중에는 최근 가격 하락을 반기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이모(43·회계사)씨는 2010년 하반기 서울 동작구의 아파트를 팔고 은행 대출 2억원을 끼고 개포주공 3단지 35㎡ 아파트를 투자용으로 6억5000만원에 샀다. 당시만 해도 가격이 제법 떨어진 상태여서 더 크게 내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 아파트는 현재 5억8000만원 선까지 하락했다. 이씨는 "친구들이 술자리에서 '강남 집값 떨어졌다는데 고민 많겠다'는 말을 툭툭 던지는데 다들 속으로는 고소해하는 것 같아 화가 치밀었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지난 14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재개발·재건축 때 소형주택 비율을 확대해야 한다는 응답이 77.1%에 달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하지만 강남 재건축 아파트 시장 침체는 서울 주택시장에 공급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울의 주택공급은 현실적으로 재개발과 재건축 외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이미 뉴타운·재개발 예정지 가운데 610곳에 대한 전면 재검토 방침을 밝혀 대부분 재개발 사업이 중단 위기에 놓여 있다. 장성수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강남 아파트 수요가 분명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재건축을 통한 공급 통로를 막으면 당장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집값 상승이라는 부작용을 불러오게 된다"며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떨어진다고 해서 서민주택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