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이차 시동 거는 법을 모르겠는데요.”
식당 자리에 앉은 지 몇 분이 안 돼, 조금 전 차 열쇠를 건네 받았던 식당 주인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주차된 차를 이동시키려는 식당 주인은 아무리 열쇠를 돌려봐도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그 차는 하이브리드차에요. 가속페달을 밟으면 움직일 거에요”
퓨전 하이브리드는 시동을 걸어도 엔진음이나 진동이 전혀 없다. 최대 시속 76km(급가속 제외)까지 엔진 대신 전기모터로만 달릴 수 있어, 엔진구동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포드코리아가 지난 8일 출시한 ‘퓨전 하이브리드’는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미국 브랜드가 선보이는 최초의 하이브리드 차량이다. 그동안 미국차는 덩치가 크고 기름을 많이 먹는 차라는 인식이 강했다. 때문에 퓨전 하이브리드의 성능과 연비에 대해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다.
퓨전 하이브리드는 전 세계 베스트셀링 중형세단 ‘퓨전’의 플랫폼(차 뼈대)에 포드 하이브리드 기술이 결합돼 탄생한 차량이다. 특히 2012년형 퓨전 하이브리드는 미국 US뉴스가 선정한 ‘2012년 베스트 하이브리드 패밀리 카’에 선정되며, 차량의 성능과 상품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서울에서 강원도 춘천시 강촌까지 왕복하는 총 180km 구간에서 시승을 해봤다. 시승에 사용된 차량은 2012년형 퓨전 하이브리드다. 이 차량은 전장(차체 전체길이)이 4845㎜로 뉴 캠리(4805㎜)와 쏘나타 하이브리드(4820㎜)보다 길어, 중형세단의 중후한 멋과 넓은 실내공간을 자랑한다.
시동을 걸자 아무런 반응이 없다. 가속페달을 밟자 다소 둔탁한 엔진음이 ‘부웅’하며 소리를 냈다. 조금씩 속도를 올려봤다. 마치 지하철을 탄 것처럼 차가 즉각적으로 반응하면서 미끄러지듯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가속페달을 깊숙이 밟으며 속도를 내자 엔진이 구동되면서 힘이 붙기 시작했다. 물론 계기판 왼쪽에 ‘EV(전기 사용 현황)’은 점점 ‘0’으로 떨어지면서 어느새 휘발유 엔진 차량으로 변해 빠른 반응으로 치고 나갔다.
물론 이 차량이 하이브리드카인 만큼 역동적인 동력성능을 기대할 수 없다. 가속페달의 반응은 반박자 정도 느렸고, 느린 가속감과 함께 터질듯한 엔진음이 차체를 감싸 귀에 거슬렸다. 또 제동력은 다소 밀리는 느낌이 들었다. 따라서 고속주행 시 갑작스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 브레이크 페달에 자꾸 신경을 써야 했다.
하지만 이 차량의 가장 큰 장점은 놀라운 연비다. 퓨전 하이브리드의 공인연비는 L당 16.7km로 경쟁차량인 뉴 캠리의 23.6km보다 약 7km 떨어진다. 하지만 뉴 캠리의 실연비는 도심에서 L당 9km, 고속도로는 L당 11km로 공인연비와는 차이가 심했다.
반면 포드 퓨전하이브리드의 실연비는 도심지역에서 L당 13km, 고속도로에서 L당 15km로 공인연비 수준에 근접했다.
이러한 공인연비의 수치상의 차이에 대해 포드코리아 측은 “공인연비가 L당 20km인데 실연비가 10km로 반 토막 나는 하이브리드차와는 차이가 다르다”며 실연비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포드는 지난 2008년 리먼사태 이후 파산신청을 한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와는 달리 강력한 체질개선을 통해 미국 ‘빅3’의 재기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중형세단 퓨전을 비롯해 준중형 ‘포커스’는 미국차의 기름기를 쫙 빼 미국과 유럽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퓨전 하이브리드의 L당 16.7km의 높은 연비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퓨전 하이브리드는 직렬 4기통 2.5L 엣킨슨 사이클 엔진과 전기 모터로 총 191마력의 최고 출력을 자랑한다. 이 차량은 포드의 기존 1세대 하이브리드 모델보다 20% 이상 출력을 높였으며, 2세대 시스템보다는 무게를 23% 줄인 배터리를 장착했다.
특히 퓨전 하이브리드는 엔진과 모터 간 변환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포드의 독자기술인 ‘파워스플릿 테크놀로지 시스템(PTS)’을 적용해 연비 효율을 최적화했다. 그 결과 이 차량은 연료 소비 없이 전기모터로만 시속 76km까지 주행(EV 모드)이 가능하며, 배터리의 힘만 갈 수 있는 최대 3.2km의 거리를 달릴 수 있다. 따라서 저속으로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도심지역에서 연비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장점은 하이브리드 주행에 최적화된 ‘스마트 게이지(LCD 계기판)’로 차량의 모든 정보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계기판 왼쪽에는 현재 사용되고 있는 전기량과 배터리의 잔량을 살펴볼 수 있으며, 오른쪽에서는 휘발유의 잔량과 실시간 연비 그리고 현재 얼마큼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퓨전 하이브리드 가격은 4760만원으로 경쟁차량인 뉴 캠리(4290만원)보다 약 470만원 비싸다. 하지만 실연비 면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가진 만큼 뉴캠리와 진검승부가 펼쳐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