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이 사상 최고치에 육박하면서 유류세 인하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선 당장 인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4월에 있을 총선 공약으로 각 당이 반영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2010년 정부가 거둬들인 유류세는 모두 18조4000억원에 달한다. 정부는 현 시점에서 유류세 인하에 대해 부정적 입장이다.
◇기름값 절반이 유류세
유류세는 정유사의 세전공급가격에 붙는 교통에너지 환경세, 교육세, 주행세, 부가가치세 등 각종 세금을 말한다. 국내 정유사들은 싱가포르 시장에서 거래되는 국제제품 가격을 기준으로 운임과 환율,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가격을 정한다. 여기엔 원유를 도입할 때 부과된 관세 등도 포함된다.
2월 2주차에 정유사가 공급하는 세전(稅前) 보통휘발유 가격(L당 973.39원)을 기준으로 했을 때 유류세는 총 917.87원이다. 세금이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이다.
유류세 구조는 다음과 같다. 교통세는 본래 L당 475원 정액이었는데, 2009년 5월 21일 탄력세율 11.37%가 붙어 현재 529원으로 고정된 상태다. 여기에 교통세의 15%인 79.35원이 교육세로 붙는다. 또 교통세의 26%인 137.54원이 주행세로 더해진다. L당 745.89원은 휘발유 공급 가격이 얼마가 되든 상관없이 붙는 세금이다. 또 세전 정유사 공급가에 각종 세금을 더한 값의 10%는 부가세로 붙는다. 2월 2주차 가격 기준으로 부가세는 171.98원이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은 유류세를 인하해서 기름값을 낮출 것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20일 박주선 의원(민주통합당)은 "이란 제재 등으로 국제유가가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폭등해 서민과 중소기업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정부가 유류세 10% 인하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비자시민모임도 "작년 유류세 분석 결과 2010년에 비해 9779억원을 더 걷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보통휘발유의 유류세에 붙는 탄력세율을 현행 11.37%에서 -11.37%로 변경하는 등 유류세를 낮춰 주유소 판매가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요구는 교통세의 탄력세율을 조정해 전체 세금을 낮추라는 것이다. 소시모가 주장하는 것과 같이 탄력세율을 -11.37%로 낮추면 교통세는 420.99원으로 떨어진다. 교육세와 주행세 합계도 172.61원으로 줄어든다. 교통세 관련 세금만 해도 152.29원이 줄어드는 셈이다.
부가세도 156.67원으로 감소한다. 전체 유류세는 750.27원으로 현 수준에 비해 유류세가 20%가량 낮아진다. 교통세에 탄력세율을 적용하지 않고 정액인 475원만 반영하면 유류세가 10% 할인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탄력세율 적용 안 하면 유류세 10% 인하 효과
유류세 인하가 다시 거론되는 이유는 기름값 고공행진과 선거철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유가가 급등하던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후보들은 여·야 할 것 없이 유류세 인하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둔 지금과 비슷한 환경이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뒤인 2008년 3월 10일 정부는 L당 505원이던 교통세를 472원으로 인하하고, 주행세도 32.5%에서 27%로 낮췄다. 이전까지 744.88원이던 교통세 관련 세금은 670.24원으로 줄었다. 정부는 그해 10월 교통세를 L당 10원 더 내리고, 주행세를 3% 올려 연말까지 L당 세금 합계액을 670원 수준으로 유지했다.
문제는 10개월 가까이 유류세 인하 조치를 단행했지만, 소비자들은 이를 거의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다. 두바이유 가격이 2008년 7월 4일 역대 최고가인 배럴당 140.70달러를 기록하면서 국내 휘발유값도 급등했기 때문. 4월 L당 1600원대였던 보통휘발유 값은 7월 16일 L당 1950.02원까지 치고 올라가는 등 급등하면서 세금 인하 효과가 사라졌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이달석 본부장은 "한시 인하가 끝나고 나서 분석을 해보니 효과가 크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며 "적지 않은 재정부담에도 소비자가 느끼지 못하는 세금 인하보다는 저소득층에 대한 선별적인 지원이 낫다는 게 결론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유류세를 내리지 않았을 경우 소비자들은 고유가로 인한 고통이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정부 자료를 보면 유류세 인하에 따라 2007년 15조3492억원이었던 세수는 2008년 13조8969억원으로 줄었다. 2009년 한시 인하가 끝나고 나서는 16조1011억원으로 다시 불어났다.
◇정부 "OECD 국가들보다 세금 안 많다"
유류세를 낮출 수 있느냐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유류세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에서 20위권 후반으로 높지 않다고 설명한다. 2월 3주차 기준으로 OECD 국가들 가운데 영국((59.6%), 아일랜드(59.3%), 네덜란드(58.9%) 등은 유류 관련 세금 비중이 60%에 육박해 세금이 46% 수준인 우리나라를 크게 웃돈다. 산유국인 캐나다(29.3%)와 이웃 일본(39.8%)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가는 우리나라와 비슷하거나 높은 수준이다.
정부는 내부적으로 두바이유가 배럴당 130달러가 될 때까지는 유류세 인하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1일 거래된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전날보다 배럴당 0.29달러 하락하며 117.69달러를 나타냈다.
에너지업계 한 관계자는 "결국 우선순위를 재정수지에 두느냐, 물가안정에 두느냐의 문제"라며 "2008년처럼 유가 상승기에는 효과가 반감되기 때문에 국제유가가 오르는 지금 상황에선 섣불리 유류세 인하 카드를 사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이달 초 이란에 대한 제재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는 최악의 상황이 오면, 두바이유가 단기적으로 배럴당 180달러까지 오르는 초고유가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예측했다.
☞유류세(油類稅)
교통에너지환경세, 주행세, 교육세, 부가세 등 유류(油類)에 붙는 각종 세금을 뜻한다. 휘발유, 경유 등 자동차용 연료엔 교통세와 주행세가 붙고, 등유 등 난방용엔 개별소비세를 부과하는 등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