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슨 학교냐? 교육해놓으면 다 빼내가 버리고 만다. 돈을 더 주기도 어렵고, 답답하다." 한 조선업체 임원은 플랜트업계의 인력 쟁탈전을 소개하며 이렇게 푸념했다.
국내 플랜트업계 인력 확보 전쟁이 치열하다. 뛰어난 기술력을 인정받아 잇따라 해외 수주에 성공했지만 업체마다 이를 맡아서 수행할 자원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기 때문이다. 조선업체들도 주력 사업을 기존의 선박 건조에서 플랜트로 바꾸면서 업계 내 인력 쟁탈전은 더 복잡해지는 추세다. 육상 플랜트 전문 인력이 해양 쪽으로 넘어가는 일이 이어지는 가운데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옮기는 인력도 늘고 있다. 30년 주기로 돌아오는 전 세계 설비 투자 사이클이 겹치며 해외에서 인력을 데려오기도 쉽지 않은 형편이다.
◇인력 경쟁 불붙어, 더 심해질 듯
최근 대형 건설업체 A사의 이 과장은 B사 대표이사 명의로 된 항의 공문을 받았다. 해외 플랜트 분야에서 근무하던 사원과 대리급 직원 1명씩을 경력 직원으로 채용한 데 따른 것이었다. 이 과장은 "사원·대리급 스카우트에 정색하는 걸 보면 플랜트 인력이 귀하긴 귀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며 "이젠 스카우트할 땐 소송까지 신경 써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또 다른 건설사는 플랜트 분야 전체 인력 가운데 5%가 외부로 빠져나갔다. 이 회사 관계자는 "대형 업체 간에 경쟁이 심해 중소기업에서 인력들을 뽑아 빠져나간 인력을 채웠다"고 전했다.
선두 업체 인력을 끌어가기 위한 후발 업체들의 노력도 눈물겹다. 경험이 중요한 분야인 만큼 기존 업체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해본 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플랜트업체에 다니는 김모 과장은 "우리 회사에선 3~4년차만 돼도 프로젝트를 몇 건씩 해봐 다른 기업들에서 데려가겠다는 제안이 많이 온다"며 "얼마 전엔 지방에 있는 설계 팀을 서울로 곧 옮길 예정이니 일단 면접만 보러 오라는 전화도 받은 적이 있다"고 전했다.
이같이 다른 업체들의 러브콜이 이어지자 이 회사는 본래 8시 출근, 7시 퇴근이던 근무 시간을 1년에 1 시간씩 앞당겨 최근엔 8시 출근, 5시 퇴근으로 바꾸고 신입사원 연봉도 20%가량 올렸다.
최근 몇년 사이에 플랜트 비중을 크게 늘린 조선업체들도 인력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조선업체 임원은 "회사 내 선박 설계 인력들을 플랜트 쪽으로 돌리는 것은 기본"이라며 "조선업계만으로는 힘들어 건설회사에서 육상 플랜트 경험이 있는 인력들에도 스카우트 제의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헤드헌팅업계에서 플랜트 전문가가 1순위라고 하더라"며 "전공 과가 있는 것도 아니라 인력을 갑자기 키우기도 어려워 어려움이 많다"고 전했다.
◇신입사원 채용 규모도 크게 늘 듯
삼성중공업이 신입 채용을 지난해 400명에서 올해 대폭 늘리겠다고 밝히는 등 신입사원 공채 규모도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플랜트 전문 기업인 삼성엔지니어링은 올해 1700명을 신규 채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는 직원 수가 2010년 말 4852명에서 분기마다 400명가량 늘어 작년 9월 말 기준 6208명까지 불어났을 정도다.
허병철 한국플랜트산업협회 실장은 "2010년 조사 때만 해도 2015년까지 전체 업계에서 1만여명의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수주가 크게 늘면서 올해 채용 예정 규모만 1만명을 웃도는 것으로 집계됐다"며 "플랜트산업 특성상 기계, 화공, 공정관리, 토목·건축 등 각 분야에서 인력 부족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계약 날짜를 맞추지 못하면 그에 대한 배상은 물론 향후 수주에도 영향이 커 업체들이 무리해서라도 인력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HMC투자증권 이광수 연구원은 "앞으로 5년 이상 수주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함에 따라 인력 채용에 따른 부담은 덜한 상황"이라며 "해외 인력도 공급이 부족한 형편이지만 문화적으로 친숙한 인도 등 아시아 인력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 플랜트
발전소·담수화 시설·정유공장·석유화학제품공장과 같은 생산 시설이나 공장을 이르는 말. 건설사와 중공업 기업들이 주로 수주했지만, 최근 들어 FPSO(부유식 생산·저장설비) 등 해양플랜트 시장이 커지면서 조선업체들의 진출이 활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