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뉴타운·정비사업 ‘新정책구상’을 발표했다. 기초생활수급자에겐 모두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동절기엔 철거를 금지하는 등 개발사업을 사회적 약자 보호형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이지만, 사업구역을 쉽게 해제할 수 있도록 해 사실상 뉴타운과 재개발 정책을 원점으로 되돌리겠다는 게 핵심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뉴타운 사업에 대해 “정주권을 일방적으로 박탈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며 강하게 반대해 왔다. 박 시장은 전날 뉴타운 수습대책을 발표하면서 ‘원주민 축출’ ‘사회갈등 증폭’ ‘동네상권 붕괴’ 등 자극적인 단어를 쓰며 “재개발 40년 역사와 투기 광풍으로 뒤덮였던 10년 역사를 끝내는 날”이라고 말했다.
박 시장은 뉴타운과 재개발 사업을 ‘악(惡)’으로 보고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듯하다. 그러나 시민운동가 시절엔 정책을 만들 필요가 없으니 대안 없는 반대를 해도 크게 상관이 없지만, 서울시장이 되어서도 그렇게 하면 문제가 커진다.
당장 서울시의 발표로 서울시내 수 많은 재개발·뉴타운 사업구역의 주민들과 사업을 추진하던 건설업체는 큰 혼란에 빠졌다. 개발사업을 반대하는 주민에겐 박 시장이 든든한 지원군이겠지만, 낡은 동네를 깨끗하게 바꾸길 원하는 주민들이나 전(前) 시장들의 말을 믿고 사업을 추진하던 건설업체에겐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박 시장은 주민이 개발을 반대하면 사업을 중단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론 많은 문제가 남아 있다. 가장 큰 문제가 돈이다. 박 시장이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한 서울시내 수백개의 개발사업추진위원회나 조합은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건설업체로부터 수십억~수백억원의 자금을 빌려서 사용했다. 사업이 중단되면 추진위원회나 조합은 빌린 돈을 다시 갚아야 하는데, 해당 지역 주민들이 가구당 수백만~수천만원의 돈을 순순히 내놓을지 의문이다. 서울시는 이 비용 일부를 중앙 정부에 지원해달라고 요청할 계획이지만, 정부는 수용하기 어렵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서울시는 사업이 초기단계인 곳은 실태조사를 하고 토지 등 소유자 30% 이상이 요청하면 구역을 해제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사업이 초기단계여도 개발을 원하는 주민이 과반을 넘는 곳에선 오히려 “왜 일부 주민 말만 듣고 개발을 반대하느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시장이 뉴타운이나 재개발 사업에 부정적인 입장을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대안도 없이 “나쁜 것은 없애야 한다”는 식으로 과거 서울시 정책을 한 번에 뒤집으면 혼란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뉴타운·재개발 정책을 선(善)과 악(惡)의 구도로 보지 말고 종합적이고 현실적으로 그려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