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의 신라면 등 라면류의 대리점 납품 인상 가격을 놓고 '동네 슈퍼'가 들끓고 있다. 동네 슈퍼마켓에 공급되는 농심 대리점의 라면 가격 인상률이 '소비자가격' 인상률의 두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농심이 소비자가격은 조금만 올리고 대신 힘 없는 동네 슈퍼에 비용을 떠넘기는 '꼼수'를 벌이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 소비자가격은 6% 올랐다는데, 슈퍼 납품가는 10% 훌쩍

1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농심은 지난달 25일 신라면 안성탕면 큰 사발 등 라면류 소비자가격을 50원 인상키로 결정했으며, 이달 초부터 지역 대리점에 인상된 가격의 공장도가격을 통보하고 슈퍼마켓에 납품을 시작했다. 대형마트와 편의점과 인상된 가격의 신제품 출고가를 놓고 가격 협상에 들어갔다.

농심 라면류 가격인상 현황

지역 대리점의 신제품 출고가가 공개되면서 중소형 슈퍼마켓 점주들 사이에 불만이 가중되고 있다. 인상 폭을 비율로 따지니 소비자가격 인상 폭(6.2%)의 두 배 (13.9%)가 넘는 것으로 확인된 탓이다.

예를 들어 너구리 40개 들이 1상자를 대리점이 일선 슈퍼에 공급하는 가격은 종전 2만3300원에서 2만5560원으로 9.9%가 올랐다. 신라면 1상자(40개입)는 2만1000원에서 2만3700원으로 12.8% 상승했다. 이에 비해 너구리와 신라면의 소비자가격 인상률은 각각 7.7%와 6.8%에 불과했다.

슈퍼 점주들은 농심이 당장 눈에 보이는 소비자가격은 인상 폭을 억제한 대신, 공장도가격은 원하는 만큼 올리고 중간 유통상인 대리점 공급 가격은 나 몰라라 했다고 비판한다. 물가상승률 7%를 맞추기 위해 소비자가격은 7% 수준으로 맞췄지만, 대리점 납품가는 10% 이상 올렸다는 것.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안성탕면 5개들이 상품 소비자가격은 6% 올랐는데, 내가 대리점에서 구입해 오는 가격은 13.9%가 올랐다”면서 “신라면도 소비자가격은 개당 50원(6.8%) 올랐다고 하는데, 대리점의 매입가를 계산해보니 12.8% 오른 걸로 나온다”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 "농심, 남는 것도 없는데…" 상품 치울까 고민

7월 오픈프라이스제 폐지로 소비자가격이 부활한 것도 동네 슈퍼에는 '독'이다. 대형마트와 경쟁을 해야 하는 동네 중소형 할인마트에게 라면은 할인 판매를 해야 하는 '서비스품목'. '멀티'라고 불리는 5개들이 묶음상품은 끼워팔기를 하거나 가격을 할인판매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노량진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소비자가격 4250원짜리 너구리(5개들이)를 4000원에 팔면 비싸게 보일것 같아 3900원에 가격을 책정했다”면서 “납품원가에 세금 아르바이트비 전기료 내고 나면 마진율이 9%도 나오지 않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남는 것 없이 팔아도 슈퍼를 찾은 소비자들은 라면 값이 왜 이렇게 올랐느냐고 항의한다”고 머쓱해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소형 슈퍼 상인 조합을 중심으로 ‘농심 제품 치우기’를 독려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인터넷카페 좋은 슈퍼만들기 운동본부의 엄대현 운영자는 “라면류 가격 인상과 관련해 농심에 공식적으로 항의하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만족할만한 답변이 없을 경우 제품 반품 등의 단체 행위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심은 대리점과 정부에 책임을 떠넘겼다. 농심의 영업본부 관계자는 “기획재정부와 가격 인상을 놓고 수개월 동안 논의를 해 온 결과 가격을 낮추는 대신 유통업계가 고통분담을 같이하자고 결론을 냈다”면서 “소비자가격도 정부에서 원단위까지 지정해줬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리점들이 유통마진을 과도하게 올린 것이지 공장도출고가가 오른 것은 아니다”라며 “중소상인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농심 라면류 주요제품 유통채널별 가격 인상률

농심 홍보팀은 "농심에서 대리점에 공급하는 공장도 가격은 전국이 똑같은 가격이며, 대리점이 일선 슈퍼에 공급하는 가격은 대리점이 자율적으로 정하는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농심 홍보팀은 또 "대리점에서 일선 슈퍼에 공급하는 가격의 상승률이 '권장 소비자 가격'의 상승률보다 높은 사례는 일부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를 전체 유통망에서 발생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