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둘이 대학 졸업 때까지 한 달 생활비로 500만원 이상은 족히 들어갈 것 같은데, 퇴직금과 연금말고는 마땅한 수익이 없어요."
중견 건축설계 회사에 다니는 김모(52) 전무. 최근 '일'을 저질렀다. 서울 관악구에 도시형 생활 주택 두 채를 사들인 것. 김씨는 "2~3년 후면 은퇴할 텐데 전혀 대비를 못 했다"면서 "한 달에 100만원 이상 임대 수익이 꾸준히 나올 것 같아 그나마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본격적인 은퇴 시기를 맞았다. 하지만 본지와 신한은행이 베이비붐 세대에 해당하는 신한은행 고객 13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중 7명은 노후 준비를 전혀 못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후 대비책으로는 현재 보유한 주택을 줄여 상가나 오피스텔 등 수익형 부동산에 투자하는 방안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은퇴 후 생활 자금 9억2400만원
베이비부머는 은퇴 후 가족과 함께 생활하려면 자금이 얼마나 필요하다고 생각할까. 평균 9억2400만원으로 나타났다. 현재 55세인 베이비 부머가 은퇴하고 85세까지 30년간 생활한다고 가정하면 매달 생활비가 약 250만원 필요하다고 본 셈이다.
그러나 '준비가 돼 있다'는 경우는 3명 중 한 명꼴(31.7%). '앞으로 준비하겠다'(59.5%)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 '생각해 보지 않았다' '자녀에게 의탁하겠다' 등의 응답도 10%에 달했다.
국내 중견 기업의 김모(51) 상무는 "가진 건 5억원짜리 아파트 한 채가 전부"라며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같은 노후 준비는 생각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노후 자금은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금'(응답자의 21.8%)과 '퇴직금·퇴직연금'(19.6%)에 대부분 의존하고 있었다. 신한은행 부동산전략사업팀 임기흥 부부장은 "부모나 자녀가 적을수록 은퇴 준비가 되어 있다는 비율이 높았고, 부양가족이 많을수록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상가·오피스텔에 투자"
베이비부머의 노후 대책은 주택을 처분해 지금보다 작은 집으로 이사하고, 거기서 생긴 여유 자금으로 상가, 오피스텔, 도시형 생활 주택 등을 사들여 임대 수익을 챙기는 방안이 대부분이었다.
응답자 절반 이상(53.5%)은 기존 주택을 팔고 더 작은 집으로 이사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선호하는 주택 규모로는 중소형(66~116㎡형)이 3분의 2 이상을 차지했다.
주택 크기를 줄여 생긴 자금으로는 '수익형 부동산을 사겠다'는 비중(25.4%)이 가장 높았다. 특히 주택을 3채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 중에는 수익형 부동산에 투자하려는 경향(38.6%)이 더 강했다.
투자 유형별로는 상가(22.3%)와 토지(16.0%) 순으로 인기가 많았고, 도시형 생활 주택(15.4%)과 오피스텔(12.1%)이 뒤를 이었다. 신한은행 유민준 과장은 "국내 부동산의 절반가량을 보유한 베이비붐 세대는 1990년대 이후 집값 급등을 경험한 적이 있어 금융 상품보다 부동산 선호도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베이비부머 절반 이상, 집값 긍정적 전망
베이비붐 세대는 '향후 부동산 시장이 안정을 유지할 것'이란 기대감을 갖고 있다. 전체 응답자의 36.8%가 '현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고 '앞으로 집값이 더 오를 것'이란 전망이 18.4%에 달했다. '잠시 조정을 받았다가 상승할 것'이란 시각도 15.4%나 됐다.
조사에 참가한 베이비부머의 평균 순자산은 4억6800만원, 금융 대출은 1억200만원으로, 전체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이 22%에 불과했다. 이들이 대출 상환 부담 때문에 부동산을 급하게 처분하는 일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급격한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부동산114' 김규정 본부장은 "최근 수익형 부동산 투자 붐이 일면서 공급량도 크게 늘어났기 때문에 2~3년 뒤부터는 공급 과잉에 따른 수익률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투자를 결정할 때는 주변 임대 수요와 집값 대비 임대료 수준 등을 따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