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레알·에스티로더 등 해외 유명 화장품 업체들이 최근 내년 매출 전략을 짜는 데 고심하고 있다. 두자릿수 성장을 기록하던 백화점이 내년도엔 한자릿수 성장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업계에 팽배하기 때문이다. 최근 유통학회가 밝힌 내년도 백화점 매출 증가 전망치도 전년 대비 7% 성장에 그치고 있다.

백화점 위주로 영업하는 해외 화장품업체들은 매출 확대를 위해 다른 방책을 강구해야 될 시점이 왔다고 입을 모은다. 이런 상황은 화장품업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백화점에 입점한 상당수 업체가 내년 마케팅 전략에 부심하고 있다.

백화점업계가 겪고 있는 성장의 정체의 고민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파리·홍콩 등 세계 각지의 백화점들도 마찬가지다. 각국 백화점업체들은 '복합몰''전문관'이라는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며 성장의 정체와 위기 극복을 시도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복합쇼핑몰인 미드타운. 연면적 56만6945㎡(17만1500평)으로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했으며 쇼핑몰·산토리 미술관·박람회장·호텔 등이 들어서 있다. 특히 대지면적 중 40%를 녹지공원으로 조성하는 등 자연과 쇼핑, 문화가 어우러진 복합공간으로 만들어 최근 복합 쇼핑몰의 교본이 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시대가 백화점 대신 복합쇼핑몰 키운다.

그동안 국내 백화점들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던 일본 백화점은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고객 창출에 실패해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1999년 311개로 정점을 찍었던 일본의 백화점 숫자도 2009년 271개로 줄더니 지난해엔 10곳 이상이 폐점했다. 2011년 9월까지 일본 백화점 업계 총 매출액은 4조4000억엔으로 전년 동기 대비 3%가 감소했다. 현재 일본 백화점업계 전체 매출은 20년 전 최전성기(1991년)의 약 63% 수준에 머문다.

유통업체들은 백화점의 위기를 쇼핑과 여가, 문화생활 등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복합 쇼핑몰을 통해 돌파하려고 한다. 대표적인 예가 2008년 오픈한 일본 사이타마현 이온 레이크 타운. 연면적이 36만㎡(10만8000평)에 달하는 도쿄돔의 5.7배 규모로, 저스코(종합수퍼)·마루에쓰(수퍼마켓)·비브레(패션전문)·이온바디(건강·미용상품 전문점) 등 565개 임대매장을 갖추고 있다. 오픈 1개월 반 만에 입장객 870만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지난 5월 일본 오사카에 문을 연 JR 오사카미쓰코시이세탄도 화제다. JR 오사카역 재개발에 따라 기존의 다이마루 백화점 우메다점이 리뉴얼 증축해 문을 열었다. 이곳은 백화점 2개와 전문점, 영화관 등 상업 시설과 호텔, 오피스가 결합한 초대형 복합 쇼핑몰이다. 이세탄백화점과 미쓰코시백화점그룹 합병 이후 처음 공동 개발한 점포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는 평이다.

국내 백화점들도 차세대 먹을거리를 '복합 쇼핑몰'에서 찾기로 하고, 최근 이러한 형태의 복합 쇼핑몰로 변화하고 있다. 9일 김포공항에 오픈한 롯데몰을 비롯해 2015년 신세계가 오픈할 하남유니온스퀘어 등이 그런 예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자동차 보급이 활성화된 지금 단순히 물건을 사는 쇼핑이 아니라 나들이를 위한 여가 공간이란 개념을 접목한 복합 쇼핑 시설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9일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 오픈할 롯데몰 김포공항점의 내부. 연면적 31만4000㎡에 지하 5층, 지상 9층 규모의 대규모 복합 쇼핑공간이다.

백화점? No. '전용관' 시대가 온다

과거엔 '없는 것 없이 다 있어야' 백화점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백화점도 전문화되고 있다. 그동안 있는 대로 모아둔 형태의 백화점만으로는 차별화 요소가 적어 신규 고객을 끌어들일 요인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10대부터 20~30대까지 패션에 관심 있는 소비자들은 인터넷·모바일 쇼핑에 익숙해 있어 이들을 백화점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선 '+a'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전문관'이다. 프랑스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이 패션 명품관·홈리빙관 등으로 분화시켰지만, 기존 여성 중심 고객의 틀을 그다지 확장시키진 못했다는 평이다.

이에 도전장을 내민 건 일본과 홍콩의 백화점들. 백화점은 주로 여성들이 찾는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남성 전용관'을 내세운 것이다. 얼마 전 도쿄 쇼핑가인 유라쿠쵸(有樂町)에 오픈한 한큐 멘즈 도쿄는 기존 유라쿠쵸 백화점을 9개층의 남성 전용 백화점으로 새 단장 했다. 연간 매출액 120억엔(약 18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지난 10월엔 홍콩의 대표적인 쇼핑몰 랜드마크에서 랜드마크 멘을 오픈해 화제가 됐다. 약 6000㎡ 규모로 루이비통·발렌티노 맨·구치 맨 등 전 세계 남성 명품 브랜드가 집결해 있다. 남자들이 과연 얼마나 올까 싶지만, 숫자로 보면 예상을 뛰어넘는다. 미국 경제전문채널 CNBC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명품시장에서 남성의 소비규모는 70억위안(약 1조2300억원)으로 같은 기간 여성의 소비(28억위안)보다 훨씬 많았다.

롯데유통전략연구소 백인수 소장은 "소비주도 세대가 40~50대에서 20~30대로 변화되면서 이들의 취향에 맞는 전문관, 복합쇼핑몰 등 극과 극의 형태가 핵심 유통업태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