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는 중견기업 임원 김모(52)씨는 정년이 3년 남았다. 연봉 8000만원을 받고 있지만 아파트(5억2000만원) 한 채와 펀드에 묶인 돈(3000만원)이 거의 전 재산이다.
회사에서는 최근 퇴직금(1억5000만원)을 중간정산하라고 하는데, 목돈을 받아 봤자 굴릴 곳도 마땅찮다. 몇 년 전부터 월 34만원씩 연금저축을 붓고 있지만, 노후자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안다. 김씨는 "아직 고등학생인 아이들 학교 때문에 아파트를 처분해 이사 가기도 어렵다. 돈을 어디에다 투자할지도 모르겠고 노후가 두렵다"고 말했다.
부동산과 여유 현금이 있는 김씨는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다. 24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퇴직을 앞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출생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56%가 "퇴직 이후 노후생활 준비가 안 돼 있다"고 응답했다. 노후 준비가 돼 있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14%에 불과했다.
준비 안 된 은퇴 예비자들에게 또 다른 악재는 우리나라가 이미 저(低)성장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어렵게 모은 은퇴자금에 기대만큼 이자가 붙지 않는 시대엔, 은퇴를 준비하는 전략도 달라져야 한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는 이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성장률 하락기에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은퇴 준비자들에게 5가지 행동요령을 제시했다.
①금융이해력을 높여라
금리·수수료·자산가치 등 금융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 한다. 최근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미국 성인 1500명에게 '연 2% 금리로 100달러를 5년간 저축하면 얼마가 되나'라는 간단한 객관식 문제(답은 102달러 초과, 102달러, 102달러 미만 중 택일)를 냈다. 100달러를 1년만 저축해도 102달러다. 하지만 정답(102달러 초과)을 맞힌 사람이 65%밖에 안 됐다.
②기대수익률을 낮춰라
외환위기 이전인 1997년 정기예금 금리는 연 10.6%였다. 요즘(연 3.5%)과 비교하면 '꿈의 금리'다. 과거 자산 불리기의 대표수단이었던 부동산도 예전 같지 않다. 저성장 시대엔 기대수익률부터 현실적으로 낮게 잡아야 한다.
③은퇴 준비를 일찍 시작하라
같은 돈을 저축한다 해도 금리가 낮으면 전체 은퇴자금을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기대수익률이 2%포인트 떨어졌을 때(6→4%) 20대는 은퇴자금을 준비하는 기간이 6년 더 필요하고, 30대는 4년 더 필요하다는 것이 연구소의 분석이다. 은퇴자금을 적립하는 시기를 최대한 앞당겨야 한다.
④은퇴저축금액을 늘려라
더 이상 은퇴 준비를 앞당길 수도 없는 40~50대는 다달이 적립하는 은퇴 준비금을 늘려야 한다. 현재 43세인 사람이 63세에 은퇴해 85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은퇴 후 5억6000만원이 필요하다. 수익률이 6%일 때라면 월 121만원씩 저축하면 되지만, 4% 정도인 요즘은 월 152만원씩 모아야 한다.
⑤슬로 라이프(slow life)에 적응하라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덜 쓰는 것도 중요하다. 고(高)성장기에 형성된 소비습관을 재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경영 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은퇴자는 소비를 크게 줄여야 하는데 조사해 보면 은퇴 이전보다 지출을 9%밖에 안 줄인 것으로 나온다"며 "불필요한 소비를 최대한 자제하는 습관을 미리 들이는 게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