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서 운수업을 운영하는 A사장은 얼마 전 회사운영자금 1억원을 마련하기 위해 보증기관을 찾았다. 회사의 연매출이 5억원에 이르는 등 기업 자체에 별문제가 없어 쉽게 보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예상 밖의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A씨가 한때 신용 불량자로 등록됐던 것이 화근이었다. 보증 신청 시점에는 이미 신용 불량자에서 벗어난 상태였지만 개인 신용등급이 낮다는 이유로 A씨는 결국 보증을 거부당했다.

최근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중소기업 금융 개혁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은 현재의 중소기업 지원 금융시스템에 문제가 많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보증기관과 은행이 중소기업의 잠재력, 발전 가능성보다 형식적 대출요건에 집착해 창업 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이 크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21~22일 중소기업 현장 방문에서도 "미국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 최고경영자(CEO) 같은 성공 사례가 크든 작든 많이 나와야 한다"며 "청년 창업이 활발해지도록 금융 분야에서 지원을 많이 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21일 광주 광산구 평동공단에서 열린‘창업ㆍ중소기업 금융환경 혁신을 위한 간담회’에 참석해“중소기업과 창업에 대한 모든 것을 담은 통합 사이트를 내년 2월 개설하고, 중소기업들이 보다 쉽게 대출받을 수 있는 환경도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신생 기업엔 인색한 대출시스템

중소기업 보증기관과 대출기관들이 기술력과 성장성 등 기업의 미래 가치보다는 재무제표와 보증·담보 유무 등 정량적 평가에 의존하면서 정말 자금이 필요한 기업에 자금 공급이 잘 안 되는 '동맥경화'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신생 업체들은 아무리 유망한 기업이라 하더라도 빚보증이 있거나 사양업종에 속하면 대출을 거절당하기 일쑤다. 신용보증기금의 신규 업체에 대한 보증 실적은 2009년 5만9339개 업체, 8조9370억원에서 올해 10월 말 현재 3만5311개 업체, 4조5361억원으로 감소했다.

반면 한번 보증을 받은 업체들은 10년 이상 계속 보증을 받으며, 창업 기업의 신규 지원에 높은 진입 장벽 기능을 하고 있다. 신용보증기금의 전체 보증 잔액 47조원 중 10년 이상 장기 보증 잔액비율이 11%에 이른다. 하지만 기존 보증 기업에 대한 부실한 점검 기능은 보증사고가 계속 느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사고액은 2007년 1조1700억원에서 2010년 말 현재 1조8700억원으로, 기술보증기금은 6100억원에서 8200억원으로 증가했다. 이 때문에 금융회사들이 좀 더 과감하게 신생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중소기업연구원 홍순영 선임연구원은 "정책 당국이 금융기관 사고율 관리에 집착하지 말고, 고용 창출 등 정책적 목적을 제대로 실현했는지에 초점을 맞추면 금융회사들도 실적이나 담보가 부족한 기업들을 과감하게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은 최근 "이익금의 10% 정도까지 대손 처리를 각오하면서 청년 창업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김석동 위원장이 구상 중인 대책도 우량 중소기업의 경우 담보 없이 기술력이나 사업성만으로도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은행원이 중소기업에 대출을 했다가 부실이 나더라도 절차만 지켰다면 은행이 불이익을 줄 수 없는 제도적 장치도 만들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석동 위원장, 아픈'창업의 추억'

김 위원장이 중소기업 금융 개혁에 적극 나선 이유는 개인적인 경험과도 관련이 깊다. 그 자신이 청년 시절 창업했다가 실패한 쓰린 경험을 갖고 있다. 김 위원장은 대학(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후 삼성물산에 들어갔다가 1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1978년 25세의 나이에 '주제실업'이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가죽 원단을 수입해 옷을 만들어 수출하는 업체였다. 하지만 2차 오일 쇼크가 온 데다 사기까지 당한 김 위원장은 자금난에 빠져 1년 만에 회사문을 닫았다.

후일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무원이 된 김 위원장은 이 시절을 회상하며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이 필요하다고 역설해 왔다. 한 경제 관료는 "과장, 국장 시절에 '나중에 장관이 되면 혁신적인 중소기업 금융 지원대책을 만들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중소기업 금융 지원이 정부의 중소기업 육성책에서 한 토막으로만 들어가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청년 사장 시절 돈을 끌어오는 데 애를 먹었던 기억 때문에 금융이 중심이 되는 중소기업 대책을 만들고 싶어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