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중역 회의에서 강조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월터 아이작슨이 집필해 24일 전 세계 공동 출간된 스티브 잡스의 첫 자서전 '스티브 잡스'에는 잡스가 팀 쿡과 조니 아이브 등 차세대 애플을 이끌 수석 경영자들에 애플의 미래를 강조한 부분이 나온다. 이 밖에도 그의 자서전에는 애플의 기업공개 당시 스톡옵션을 둘러싼 뒷이야기와 유독 디자인에 집착했던 그에 대한 에피소드들도 많이 있다.
◆ 애플의 미래를 강조한 중역회의
스티브 잡스는 매주 월요일 아침 9시에 시작해서 서너 시간씩 이어지는 중역 회의에서 언제나 미래를 강조했다. 팀 쿡이 10분동안 차트를 보여주며 전반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나면 중역들은 회사의 제품 각각에 대한 광범위한 토론을 시작했다. 팀 쿡과 디자이너 조니 아이브를 포함해 아이폰 소프트웨어 책임자 스콧 포스톨, 마케팅 책임자 필 실러, 맥 하드웨어 담당자 밥 맨스필드, 인터넷 서비스 책임자 에디 큐, 최고재무책임자(CFO) 피터 오펜하이머 등이 토론에 참여했다.
토론의 주요 주제는 각 제품이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야하며 어떤 제품이 새롭게 개발되어야하는지 등이었다. 잡스는 이 미팅을 통해 애플의 모두가 사명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화하고 통제력을 중앙으로 모으며 업무의 초점을 강화했다. 팀 쿡은 "우리들은 잡스가 우리에게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우리들의 아이디어를 반박하고 기꺼이 논쟁을 벌이기를 기대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면서 "잡스는 일부러 논쟁을 벌이려고 반대입장을 취하고 더 나은 결과를 나오게 한다"고 말했다.
◆ 애플의 기업공개와 스톡옵션
1980년 잡스가 25살이던 무렵 애플이 기업공개(IPO)를 단행했을 때 애플의 기업가치는 17억9000만달러에 달했다. 그 과정에서 지분을 받은 300만명의 백만장자가 탄생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공동창업주 스티브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가 보여준 '의리'는 달랐다.
스티브 잡스는 사업 초창기 시절을 함께 했다는 이유만으로 '발기인주'를 주지 않았다. 잡스와 대학과 인도, 그리고 올 원 팜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절친한 친구 대니얼 콧기는 애플의 기업공개 당시 회사의 시급제 직원으로 근무했지만, 스톡옵션을 전혀 받지 못했다.
하지만 워즈니악은 잡스와 정반대였다. 그는 주식 공개를 하기 전에 자신이 가진 2000주를 중간급 직원 40명에게 아주 낮은 가격에 팔기로 했다. 그들 대부분은 나중에 집을 장만할 정도로 많은 돈을 손에 쥐었다. 또 워즈니악은 콧기, 페르난데스, 위긴턴, 에스피노사를 비롯해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직원들에게 자기 지분을 무상으로 나눠주었다. 이에 비해 잡스는 상당히 약삭빠른 편이었다. 그는 크리스앤 브레넌의 부양과 관련해 그녀와 딸에게 지급해야 하는 비용을 기업공개 이전에 정하고 서명까지 받아뒀다.
◆ 매킨토시 디자인은 포르쉐처럼
잡스는 유독 디자인에 집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1981년 맥 컴퓨터를 디자인할때 잡스는 크리에이티브 서비스 책임자 제임스 페리스에게 폭스바겐의 비틀처럼 유행을 타지 않는 클래식한 느낌을 주문했다. 페리스가 페라리처럼 선이 관능적이어야 하냐고 묻자 잡스는 차라리 포르쉐랑 더 닮아야 한다면서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와 자신의 포르쉐 자동차를 보여줬다. 그때 잡스의 자가용은 포르쉐928이었다.
잡스는 디자이너들이 갖고 온 맥 컴퓨터 모델 디자인에 번번이 퇴짜를 놓았다. 그러던 어느 주말 잡스는 팰러앨토에 있는 메이시스 백화점에 들어 전자기기들을 살펴봤고 디자인팀에게 쿠진아트의 제품을 하나 사오게 해 그것의 선과 곡선, 빗면을 바탕으로 새로운 제안을 여러 내놓았다. 잡스는 컴퓨터가 친근한 모습이어야 한다고 계속 우겼고 그결과 디자인이 점점 진화해 컴퓨터가 사람 얼굴 같아졌다. 디스크드라이브를 화면 밑에 장착한 그 컴퓨터는 다른 대부분의 컴퓨터들보다 더 높았고 폭이 좁았다. 밑부분에 움푹 들어간 곳은 부드러운 사람 턱을 떠올리게 했다. 그결과 맥 디자인에 대한 특허 신청에는 제리 매넉과 테리 오야마의 이름은 물론이고 스티브 잡스의 이름도 함께 올라갔다.
◆ 매킨토시를 둘러싼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거래를 시작할 때부터 그들이 매킨토시의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를 도용해 자신들만의 버전을 만들지 않을까 우려했다. 실제로 잡스뿐만 아니라 게이츠 역시 그래픽 기반 인터페이스가 미래의 운영체제라고 믿었고, MS도 애플만큼이나 제록스 PARC에서 개발한 것을 모방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애플은 MS와 함께 1983년 1월 매킨토시가 출시되면 이후 1년이 지날때까지 MS는 누구에게도 그래픽 기반 소프트웨어를 공급할 수 없다고 계약을 맺었고 게이츠는 그 계약 기간이 끝나갈 무렵 그래픽 기반 인터페이스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윈도'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잡스와 게이츠를 거센 논쟁을 벌였지만, MS는 결국 1985년 가을 윈도 1.0을 출하했고 이를 끈기있게 개선한 끝에 시장을 지배하게 됐다.
이에 대해 잡스는 거의 30년이 지나도록 분을 삭이지 못했다. 실제로 법적인 측면에서 보면 게이츠의 말이 맞았지만, 애플이 나중에 깨달았듯이 컴퓨터 인터페이스 디자인의 '모습과 느낌'은 법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보호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그는 10년 후 "MS의 유일한 문제는 미적감각이 없다는 것"이라면서 "내가 문제삼는 것은 그저 그들이 삼류 제품을 만든다는 사실"이라고 불평을 내뱉었다.
입력 2011.10.24.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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