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마침내 노총각 딱지를 떼고 '품절남(결혼한 남성)' 대열에 합류한 김 과장. 마흔을 목전에 둔 나이에 운 좋게 배필을 만나 백년가약을 맺었다. 그러나 결혼의 달콤함은 잠깐만 즐기시라. 현실은 냉정하다. 동년배인 친구들은 일찌감치 아이를 낳아 초등학생 학부모가 되어 있고, 은퇴 이후를 걱정하면서 제2의 인생까지 준비 중이다. 일반적인 신혼부부와 달리, 김 과장처럼 30대 후반 이후에 가정을 꾸리는 만혼 부부는 투자 가능 기간이 길지 않다. 김 과장에게 주어진 시간은 정년(55세)까지 15년. 남들보다 늦게 출발해 시간이 촉박한 늦깎이 부부는 압축적인 가계 재무 계획을 세워 실천하지 않으면 나중에 낭패 보기 십상이다. 머니섹션 M이 김 과장과 같은 만혼 부부를 위해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들어 봤다.

통장 인수·합병(M&A)에 나서라

만혼 부부는 각자 오랜 기간 경제생활을 꾸려왔기 때문에 모아놓은 자산이 많은 편이다. 우선 부부의 통장 리스트부터 점검해 보자.

일러스트= 김현국 기자 kal9080@chosun.com

통장은 어떤 종류든 부부가 함께 갖고 있으면 이득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청약통장처럼 부부 중 어느 한 쪽에게만 혜택이 주어져 오히려 둘이서 중복 가입하면 손해인 상품도 있기 때문에 잘 따져봐야 한다. 현재 청약통장은 주택청약종합저축, 청약저축, 청약예금, 청약부금 등 4가지로 나뉜다〈표 참조〉. 이 청약통장 중에서 청약저축은 무주택 가구주만 가입할 수 있다.

서기수 A+에셋 수석연구원은 "청약저축은 유주택자나 세대원도 가입할 수 있는 다른 청약통장에 비해 가입자 수가 적고 청약 경쟁률도 낮아 경쟁력이 있다"면서 "남녀 구분을 떠나서 일찍 가입한 청약저축이 아내 명의라면 세대주를 아내로 정해 내 집 마련 전략을 짜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참고로 청약저축은 결혼 후 배우자 간 명의 변경이 가능하다. 단, 명의 변경 시 무주택 기간 등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으므로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자녀 미취학 기간에 인생 역전 노려라

만혼 부부는 아무리 2세 출산을 서두른다고 해도 자녀 육아가 늦은 나이까지 이어진다는 게 부담이다. 특히 가장(家長)의 소득이 감소하는 시기에 목돈 지출이 발생할 위험이 높기 때문에 사전에 준비해두지 않으면 큰코다칠 수 있다. 재직 중인 회사에 자녀 대학 학자금을 지원해주는 복지 혜택이 있어도, 만혼 아빠는 아이가 대학에 가기도 전에 정년을 맞아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동일 KB국민은행 압구정PB센터 팀장은 "첫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1억원을 모은다는 각오로 독하게 재테크해야 한다"며 "자녀 교육 자금을 준비할 땐 대학 등록금이 앞으로 인상된다는 점을 고려해 효율적인 상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중금리에 연동되는 정기적금이나 저축보험보다는 펀드·변액보험 같은 투자형 상품이 유리하다는 얘기다. 투자형 상품은 앞으로 돈을 사용할 기간이 얼마나 남아 있느냐에 따라 고르면 된다. 예컨대 대학 등록금을 준비하는 상황인데 현재 자녀가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면 변액보험을, 초등학교 고학년이라면 적립식 펀드를 활용하는 식이다. 변액보험은 가입 초기에 비용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수익이 나려면 7~10년 이상은 가입해야 한다.

내 집 마련 전략, 재정비하라

결혼이 늦은 부부는 이미 집을 한 채씩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집 두 채의 기쁨도 잠시. 혼인신고를 하자마자 1세대 2주택이 되어 버리니 세금 부담이 만만치 않다. 이렇게 미혼 시절 1주택을 보유한 두 남녀가 결혼해서 다주택이 된 경우엔 세금 구제 방법이 있다. 혼인신고일로부터 5년 이내에 1주택을 양도하면 비과세 혜택을 챙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때 양도하는 주택은 비과세 요건(3년 보유)을 갖춰야 한다. 전현진 신한금융투자 팀장은 "결혼 같은 특별한 사유로 비과세 혜택을 적용받으려면 일정 기간 이내에 양도해야 한다는 제약이 붙는 만큼, 해당 기한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직 무주택이어서 전셋집에서 가정을 꾸리는 만혼 부부라면, 2년마다 돌아오는 전세 보증금 인상에 신경 써야 한다. 장우승 희망재무설계 팀장은 "집값이 안정되어도 전세금은 매년 물가 상승률만큼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며 "현재 전세 보증금의 10% 이상을 전세금 인상에 대비해 비축해 두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보증금 인상에 대비한 자금은 투자 상품으로 굴리면 전세 갱신 시점에 돈을 찾을 수 없는 유동성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은행 정기예·적금과 같은 저축성 상품으로 운용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장 팀장은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