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용 카누와 아이패드, 나이키 운동화와 주방용 믹서'
지난 12일 미국 디트로이트에 있는 GM 디자인&연구개발센터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들이다. 자동차를 만드는 곳에 이런 물건들이 왜 널려 있을까? 캐서린 서비오 GM 북미 디자인연구소 매니저는 “먼저 소비자를 이해하고 자동차를 디자인해야 한다”면서 “현대인의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런 도구들이 주는 느낌을 자동차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고객을 먼저 이해하고 디자인에 나서라
GM의 디자이너들은 요즘 현대인의 일상생활을 연구하느라 바쁘다. 이전에는 엔지니어들의 요구에 맞추면서 적당히 보기 좋은 디자인을 그렸지만, 더는 이런 디자인이 통하지 않기 때문. GM의 디자인을 총괄하는 애드 웰번 부사장도 “예전 디자인은 감동적이지 않았다”고 했을 정도다. 그래서 디자인팀은 현대인의 일상을 면밀히 파악한 다음, 이를 어떻게 기가 막힌 방법으로 자동차에 반영할까를 고민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최근 자동차의 동력 성능을 표현하는 데는 나이키 운동화가 이용됐다. 자동차를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닌 즐거움의 대상으로 보는 소비자가 크게 늘어나는 상황. 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판매할 자동차의 스포티한 느낌을 전할까를 고민하던 디자인팀은 나이키에서 가장 잘 팔리는 ‘루나 레이서’라는 제품에서 영감을 얻었다. 자동차와 운동화는 달린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디자이너들은 루나 레이서에 들어간 빗살무늬를 자동차 안쪽을 감싸는 가죽에 그려넣어 시트나 콘솔박스에 적용했다.
디자인팀은 요즘 자동차를 구매하는 소비자의 40%를 차지하는 젊은 층에 대한 공부도 한창이다. 이들은 기성세대와는 분명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70%의 인구가 부모로부터 독립해 결혼하고 자녀를 출산하는 일을 30살이 되기 전에 마쳤지만,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이 비율은 10% 미만으로 떨어졌다. 이전에는 30대 고객 중 기혼자가 많았다면, 지금은 미혼의 비율이 훨씬 높은 것.
이들은 이동통신기기로 하루 평균 60개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행동도 보인다. 디자이너들은 이런 젊은 층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고, 이들에게 편안한 느낌을 줄 수 있는 디자인이 무엇일지 연구했다. 그리고 소형차에는 가죽 소재보다 플라스틱 소재를 많이 쓰기로 했다. 또 각종 버튼에는 작은 LED 조명을 설치해 야간에 환상적인 디지털 분위기를 한층 더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 밖에도 갓 가정을 꾸린 세대가 많이 찾는 준중형 세단에는 가정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계기판에 섬유 소재를 넣었다. 환경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는 대나무 소재를 사용하는 것도 연구 중이다. 서비오 매니저는 “각기 다른 고객군을 만족하게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애매한 작업이지만, 결국 고객의 이야기가 어떻게 차에 반영되는가가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 누가 봐도 쉐보레임을 알 수 있게 하라
GM은 지난 2006년부터 디자인의 정체성을 세우는 작업도 시작했다. 대표 브랜드인 쉐보레만 해도 나라마다 다른 디자인의 제품을 선보이며 글로벌 시장에서 ‘이것이 쉐보레’라는 인식을 주지 못했던 상황. 하지만 최근 출시된 경차인 스파크와 소형차인 아베오, 준중형차인 크루즈는 누가 봐도 쉐보레임을 알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기아자동차가 피터 슈라이어 부사장을 영입하고 일명 ‘호랑이 코 디자인’으로 패밀리룩을 완성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런 디자인 정체성 확립은 판매 신장으로도 이어졌다. 스파크와 아베오는 상반기 각각 14만대와 18만대 팔렸고, 크루즈는 37만여대가 판매되며 쉐보레의 베스트셀링카로 이름을 날렸다. 이 제품들은 특히 한국 디자인팀의 작품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애드 웰번 부사장은 “최근 쉐보레 디자인에 한국팀이 큰 역할을 했다”면서 “특히 크루즈는 고객의 목소리를 들으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보여준 대표 사례”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