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식 날 우리팀을 찾지 않아 떨어진 줄 알았는데 1등이라는 말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 했어요"

이탈리아 슈퍼카 업체인 페라리가 대학생을 대상으로 주최한 '페라리 월드 디자인 콘테스트'에서 우승한 안드레(24·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 재학)씨는 우승소감을 묻자 이 같이 말했다.

안 씨는 "아직도 우승을 실감하지 못하겠다"며 "대회를 준비하는 5개월 동안 일주일 중 4일 이상 밤을 지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을 아끼느라 냉면을 지겹도록 먹었는데, 이제는 추억으로 남았다"며 밝게 웃었다.

페라리 디자인 어워드에서 우승을 차지한 홍익대팀. (왼쪽부터)안드레, 이상석, 정주현 교수, 김청주 학생

안 씨는 같은 과 후배인 김청주씨(24), 이상석씨(22)와 함께 페라리 월드 디자인 콘테스트에 출품, 전 세계 16개국 50개 디자인 관련 학교에 재학중인 쟁쟁한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김청주 씨는 "출품 일주일을 앞두고 매일 날밤을 새웠는데 어느날 안드레 형이 전화를 받지 않아 불안한 마음에 형이 혼자 살고 있는 옥탑방에 뛰어갔더니 정말 죽은 듯 쓰러져 있어 깜짝 놀랐다"고 회상했다.

안 씨 등 홍익대팀이 출품한 '영원(eternity)'은 탄소 소재의 2인승 차량으로 친환경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영원'은 무한대(∞)를 뜻하는 수학기호에 영감을 얻어 8자 형태로 설계됐다. 앞쪽이 좁고 뒤쪽으로 갈수록 두터워지는 물방울 모양의 차체는 공기저항을 최소화해 고속에서도 안정된 주행이 가능하다. 또 차량 앞쪽에는 페라리의 구형모델에 사용되는 튜브형 그릴을 사용해 휠 냉각과 활동성을 더했다.

페라리 심사위원들은 '영원'이 기능성과 작품성을 모두 만족시켰다고 평가했다. 루카 디 몬테제몰로 페라리 회장은 "1등으로 당선된 한국 학생들의 작품은 미래 페라리 디자인에 많이 활용될 것"이라고 극찬했다.

홍익대팀이 페라리 디자인 어워드에 출품한 '영원'의 모형.

특히 ‘영원’은 자동차의 스타일링 뿐만 아니라 에너지 저장장치, 동력장치 등에도 신기술이 접목됐다. 초전도 기술을 응용한 동력장치는 태엽과 같은 팬이 돌면서 전기에너지를 물리적인 에너지로 저장해 차량의 동력으로 이용한다. 마치 F1머신의 ‘컬스 시스템’과 비슷한 원리다.

안 씨는 “초전도 동력장치가 기존 엔진에 비해 반응이 빨라 슈퍼카라는 페라리의 전통을 해치지 않으면서 새로운 혁신을 줄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고 설명했다.

실내 인테리어 디자인을 담당한 김청주 씨는 “디자인을 위해 자료수집을 하면서 친환경 규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페라리가 향후 어떤 존재가 돼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다”며 “심사위원들도 21세기 페라리를 보고 싶을 것이라는 생각에 친환경을 강조하기 위해 신기술을 응용했다”고 덧붙였다.

김 씨는 이어 “아무리 새로운 디자인이라도 페라리에서 ‘우리 패밀리 같지 않다’는 평가를 받으면 소용이 없다”며 “새로움과 전통을 살리는 디자인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우승을 차지한 홍익대팀 3명의 학생은 10월부터 이탈리아 페라리 본사에서 인턴으로 실습을 받는 등 최종 채용과정을 밟게 된다. 페라리는 별도의 디자이너를 채용하지 않고 외부 디자인 스튜디오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최근에는 자체 디자이너 육성에도 적극적이다.

홍익대팀은 이번 수상의 숨은 공로자로 정주현 홍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와 국내에 페라리를 공식 수입하는 FMK를 꼽았다. 이들은 디자인이 막힐 때마다 지도교수인 정 교수를 찾아가 해법을 고민했다. 정 교수는 또 대회 마감 이틀을 앞두고 작품이 제 시간에 도착하기 어렵다는 점을 알고 FMK 측에 운송을 부탁했다.

정 교수는 “이번 공모전은 페라리의 디자이너 확대 전략과 맞물려 인재 확보 차원에서 기획됐다”면서 “인턴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돼 지도교수로서 무척 기쁘다”고 흐뭇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