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계열사에 골고루 투자하는 삼성그룹주 펀드는 지난 2004년 혜성처럼 등장한 뒤 '믿을 만한 펀드'로 자리 잡았다. 해마다 코스피지수 상승률보다 약 10%포인트 높은 수익을 냈고,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코스피지수보다 10%포인트 덜 하락해 '역시 우량주'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최근 삼성그룹주 펀드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올해 수익률이 그룹주 펀드 중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대신 현대차그룹주 펀드가 왕좌를 차지했다. 전기전자·반도체·금융에 집중돼 있는 삼성그룹주의 주가가 상반기 부진했던 반면, 자동차·중공업 중심인 현대 계열사들의 주가는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현대家, 그룹주 펀드 시장 재편

현재 국내에는 삼성·현대차·현대·SK·LG·한화 등 6개 그룹을 공략하는 그룹주 펀드가 30여개 출시돼 있다.

각 그룹주 펀드의 올해 수익률을 분석한 결과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등에 투자한 현대차그룹주펀드가 22%로 1위를 차지했다. 현대차·현대중공업·현대제철·현대백화점 등 범현대 계열사를 골고루 편입한 현대그룹주펀드의 수익률도 19.2%로 우수했다. SK이노베이션·SK케미컬 등의 상승에 힘입어 SK그룹주 펀드가 7.6%로 양호한 성적을 보였고, 한화케미컬·한화 등에 투자하는 한화그룹주 펀드가 5%, LG그룹주 펀드가 3.4%의 수익을 올렸다. 삼성그룹주펀드는 0.6%대로 꼴찌였다. 시가총액 기준 3대 그룹에 골고루 투자하는 펀드는 7.8%, 5대 그룹주 펀드는 6.9%의 수익을 올렸다.

전문가들은 상반기 주식시장을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과 조선주가 주도하는 사이 IT·금융주가 뒤로 처지면서 그룹별로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다고 분석한다. 배성진 현대증권 펀드리서치 연구위원은 "현대·현대차그룹이 자동차와 조선업, 내수업 등 상반기 각광을 받은 업종에 집중돼 있는 반면 삼성그룹은 글로벌 경기 둔화로 부진했던 IT업종과 금융 업종에 집중돼 있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 6월 한국 증시 역사상 운송장비업종의 시가총액이 전기전자업종을 처음 역전한 것과도 무관치 않다. 7년 전만 해도 삼성전자의 4분의 1도 안 되던 현대차·현대모비스·현대중공업의 시가총액 합은 최근 삼성전자의 시가총액(124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잘나갈 때 경계해야

그룹주 펀드의 장점은 대부분 우량주에 투자하기 때문에 시장에 큰 충격이 있을 때 상대적으로 잘 방어한다는 점이다. 또 특정 테마나 업종이 상승하는 시장에서 해당 종목이 많은 그룹주 펀드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낸다. 그러나 일시적인 상승장이 지나갈 경우엔 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계웅 신한금융투자증권 자산컨설팅 팀장은 "자동차·조선업종으로 이미 수익을 많이 낸 현대 관련 펀드는 차익실현이 계속 나타날 수 있어 고수익을 기대하기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일부 현대차그룹주 펀드의 최근 1주일 수익률은 마이너스 1%대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조선업 관련 기업들이 하반기에도 좋은 실적을 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많다. 김학균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일본의 자동차 가동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고 여전히 현대차 등 자동차 종목은 저평가돼 있다"며 "조선업종도 최근 한국업체들의 수주 실적이 꾸준히 늘고 있어 전망이 밝다"고 말했다. 반면 IT업종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어두운 편이다. 김학균 팀장은 "최근 애플이나 델컴퓨터 등 소프트웨어에서 혁신을 이루는 IT기업이 성장하는 반면, 하드웨어 중심의 IT기업들은 시장에서 소외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