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6일 기름값을 내리기 위해 대안주유소 설립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자, 주유소 업계를 대표하는 한국주유소협회는 '결사 반대'라며 강력 반발했다. 주유소협회 관계자는 "5% 정도 마진을 남기는 주유소를 상대로 가격 압박 정책을 펴는 것은 사실상 가격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라며 "이럴 거면 차라리 정부가 국영화하고 휘발유 판매 가격을 공시하는 방식으로 아예 정해달라. 이게 무슨 자본주의냐"고 말했다.

경남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신상기씨는 "정부에서 자율 경쟁이라며 주유소를 1만3000개나 만들어 가뜩이나 수익이 반 토막 나 있는 상황에서 대안주유소까지 만드는 것은 기존 주유소들보고 다 죽으라는 소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6일 서울 성북구의 한 셀프 주유소를 찾은 고객이 직접 기름을 넣고 있다. 이날 정부는 기존 주유소에 비해 L당 100원 정도 싸게 석유제품을 판매하는 대안주유소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과연 대안 주유소로 기름값을 낮출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회의적인 반응도 많았다. 대전의 한 주유소 사장은 "지금 운영하는 주유소도 내 땅이니까 겨우 수지를 맞추며 영업을 하는 실정"이라며 "국공유지 등의 부지에 주유소를 짓는다고 해도 별도의 정부 지원 없이는 기름값이 낮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도 정유사 공급 가격은 세금을 제외하면 싱가포르 국제 시세와 큰 차이가 없다"며 "싱가포르 국제시장에서 제품을 들여와 관세에다 세금을 붙이면 결국 국내 주유소 가격과 거의 차이가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농협은 회원을 위해, 대형마트 주유소는 손님을 끌려고 이윤을 포기하고 주유소를 운영하지만 주유소 외에 아무것도 없는 대안주유소가 어떻게 마진을 포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안주유소 설립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 정부는 "그동안 정유업체와 주유소는 고유가를 핑계 삼아 지나친 마진으로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줬던 게 사실"이라는 입장이다. 지식경제부 정재훈 에너지자원실장은 "기존 정유사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유통 구조를 만들어 가격 인하를 유도하겠다는 것이 대안주유소 설립 취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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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대안주유소를 설립하기로 한 것은 주유소업계보다는 정유업계를 압박하기 위한 정책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정유업계의 3개월 한시 가격 할인이 종료된 시점(7월6일)을 즈음해 환율 효과(원화절상·L당 10원 인하요인), 국제비축유 방출(L당 25원 인하), 국제유가 인하(L당 10원 인하) 등으로 약 L당 45원의 인하 요인이 발생했지만, 이를 정유업계가 제대로 가격에 반영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대안주유소 확대를 위해 기존 주유소를 흡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정 실장은 "전국에서 약 10%의 주유소가 폐업을 검토하고 있으나 주유소 폐업에 따른 복구 비용(평균 1억5000만원)이 부담스러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며 "이 주유소들의 영업권을 인수해 대안주유소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대안주유소 설립이 기존 주유소들의 가격 인하를 압박하기 위한 측면도 있지만, 영업이 어려운 주유소들의 폐업 퇴로를 열어주는 효과도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