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이나 지났는데도 반 토막이라니, 정말 펀드를 굴리긴 굴리는 겁니까?"
"환매도 안 된다니 투자자는 그냥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하는 건가요?"
"손해 보지 않는 안정적인 상품이라고 해서 학자금을 맡겼는데 원금을 까먹다니 이건 사기예요."
지난 8일 오후 동양자산운용의 베트남펀드 설명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3층 대강당. 백발의 노신사에서부터 아기를 등에 업은 30대 주부까지 펀드 투자자 90여명이 강당을 채웠다. 운용사측의 간단한 설명이 끝난 뒤 질의응답 시간이 시작되자, 투자자들은 송곳 같은 질문과 거센 불만을 연이어 쏟아냈다. 투자자들은 유독 베트남 증시가 아시아에서 '나홀로 하락'을 이어가는 이유를 궁금해했다. 펀드 운용을 책임진 이준상 동양자산운용 베트남사무소장은 "정말 면목없고 죄송스럽다. 죽도록 일해 수익률을 끌어올리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5년 만에 돌아온 반 토막 펀드
지난 2006~2007년 베트남펀드는 새로운 '엘도라도(황금향)'로 급부상하면서 뭉칫돈을 끌어모았다. 그 당시 베트남 시장으로 몰려간 코리아머니(한국 투자자금)는 1조원이 넘었다. 하지만 현재 순자산은 4700억원대에 불과하다. 5년 만기 전에 돈을 찾을 수 없는 폐쇄형 상품이 많아 중간에 자금 이탈은 거의 없었는데도 말이다.
신건국 제로인 과장은 "베트남 주식시장이 맥을 못 추는 바람에 투자 원금을 많이 까먹었다"고 말했다. 지난 2007년 1100선을 뚫고 치솟았던 호찌민 거래소 주가지수는 수직 하락해 7월 현재 400선을 맴돌고 있다. 한때 '아오자이 열풍'을 일으켰던 베트남펀드도 내리막을 걸었다. 펀드 설정일 이후 현재까지 수익률이 일제히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오는 11월 만기가 돌아오는 '한국월드와이드베트남혼합2' 펀드는 설정 이후 수익률이 마이너스 57.81%다. 5년 가까이 투자했는데 본전은커녕 투자한 원금이 반 토막 난 것이다. 동양자산운용의 베트남펀드 역시 마이너스 45% 안팎의 손실을 보고 있다. 동양자산운용 설명회에 참석한 50대 주부 A씨는 "5년 전에 그냥 은행 예금에 돈을 넣어놨으면 이자로만 최소한 300만~400만원은 나왔을 것"이라며 "이자는커녕 원금이 절반이나 깎이다니 정말 답답하다"며 울먹였다.
◆풀어야 할 숙제 많아
베트남 증시를 압박하는 3대 악재(惡材)로는 인플레이션(물가상승)과 무역수지 적자, 그리고 환율 불안이 꼽힌다.
지난달 베트남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20.82%를 기록했다. 2008년 1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세계은행은 6월 보고서에서 "베트남의 물가 상승률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금리 인상 등 통화 긴축정책 조치를 취해 물가상승률을 적어도 10% 미만으로 낮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높은 물가 상승과 점점 적자가 커지는 무역수지는 베트남 화폐 가치에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 2007년 이후 베트남 동화 가치는 31% 떨어졌다. 동양운용 측은 "주가 하락보다는 오히려 환율 때문에 펀드 수익이 많이 훼손됐다"며 "하지만 올 들어 정부의 환율 안정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어 최악의 경제 상황은 벗어난 상태"라고 설명했다.
베트남 정부가 온갖 노력을 하고는 있으나, 경제가 단기간에 회복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내부적으론 총리 선거 등을 앞두고 부정부패 등 불안한 정치 상황이 지속되고 있고, 최근엔 중국과 남중국해(베트남 동해)의 자원을 둘러싼 외부 갈등까지 불거졌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베트남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하향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부정적인 평가가 많아 글로벌 투자자금 유입을 기대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갈아타기 고려해볼만
국내에서 판매된 베트남펀드는 상장주식보다는 비상장주식에 투자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비상장주식은 환금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5년 만기 전에 돈을 찾을 수 없도록 폐쇄형 펀드로 설계됐다. 올 들어 펀드의 5년 만기가 돌아오자, 운용사들은 펀드를 청산해 반 토막 수익을 확정하기보다는 나중에 주가가 오를 경우 원금이라도 찾으라면서 만기를 연장하는 방안을 투자자들에게 권하고 있다. 늘어난 운용 기간에 투자자에게 운용수수료를 받지 않는 등 나름의 고육책도 마련해 놨다. 하지만 지난달 만기를 연장한 한국투신운용 베트남펀드에선 이미 50억원 이상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강우신 기업은행 강남PB센터장은 "정부의 긴축 조치가 진행되는 동안 베트남 증시 조정은 피할 수 없다"며 "차라리 다른 펀드로 갈아타서 추가 수익을 노리는 게 낫다"고 말했다. 김종철 신한금융투자 연구위원도 "베트남은 시가총액이 삼성전자의 4분의 1도 안 되는 작은 시장"이라며 "장기적으론 수익률이 반등해 원금을 회복할 수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손해 볼 위험성이 높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