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사태가 해결점을 찾으면서 환율이 급락하자 외환당국이 딜레마에 빠졌다.

올초부터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당국은 공공연히 물가 안정을 위해 환율 하락을 용인하는 듯한 신호를 보냈다. 환율이 떨어지면 수입물가 상승분이 어느 정도 상쇄돼 물가 안정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국의 강한 물가 안정 의지와 그리스 사태 해결 기미가 맞물리며 환율이 빠르게 내리자 당국도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지난 1일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연저점(1065원)에 근접하게 내렸고, 장중에는 연저점을 경신하기도 했다. 지난 4거래일간 20원 가까이 빠진 결과다. 간신히 연저점 경신을 피한 것은 당국의 종가(終價) 관리 때문이라고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추정했다. 당국이 환율 하락을 막기 위해 달러를 매수했다는 뜻이다.

얼마 전만 해도 상황은 정반대였다. 그리스 불확실성이 부각됐던 지난달 중순 환율이 1090원을 웃돌았을 때 당국은 달러를 시장에 내다팔며 환율 상승을 막았던 것으로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투기 세력에 엄포를 놓으며 추가 선물환 규제를 실시하기도 했다.

구두 개입에도 적극적이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협의회에서 "물가 안정을 위한 환율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시장 참가자들은 '롱플레이'(환율 상승을 예상하고 달러를 매집하는 것)를 피했고, 환율은 1080원대 후반에서 횡보했다.

그러나 지난 29일(현지시간) 그리스의 긴축재정안이 의회를 통과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앓던 이'가 빠지자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적극적으로 원화를 사들이고 달러를 내다팔았다. 물가 상승률이 6개월째 4%대를 기록하자 환율 하락 용인에 대한 기대도 더욱 커졌다.

이런 쏠림 현상이 나타나자 당국이 다시 달러 매수로 돌아선 것으로 참가자들은 추정한다.

그럼 이런 당국의 움직임이 환율 하락을 막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앞으로 환율이 내릴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환율 상승을 막는 데 열을 올리던 당국의 입장 선회도 불가피해졌다. 정미영 삼성선물 팀장은 "환율은 연저점 부근에서 당국의 속도 조절로 일단 하락을 멈추겠지만 달러 약세와 개입 레벨 하향조정 가능성도 있어 하락 시도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