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벤처캐피탈 업계가 환골탈태하고 있다. 달러로 조성된 펀드 대신 위안화로 결성된 펀드의 비중이 높아지고, 해외 증시 대신 중국 증시 상장을 목표로 하는 투자가 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중국의 기업공개(IPO) 시장은 미국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516억 달러를 기록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초기 벤처투자로 전체 산업의 밑그림을 그린 중국은 부품·기술분야와 북경·상해 밖의 지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 13일 새벽 중국 쓰촨성 성도(城都)의 슈앙리우(雙流) 공항을 빠져나오는 길목은 공사장에서 밝힌 불로 환했다. 쓰촨성 대지진으로 인한 복구가 아직도 진행중인가 하는 생각을 하려는 찰나, 신용훈 KTB투자증권 차장은 "내륙으로 몰려드는 물류 때문에 슈앙리우 공항은 늘 포화상태"라며 "그래서 제2공항을 건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서부 대개발의 중심지인 성도로 몰려드는 건 물류만이 아니다. '소비의 핵' 성도로 국내·외 자금이 몰려드느라 벤처캐피탈의 '활주로' 역시 넓어지고 있다. 신 차장은 "성도 금융성(金融城)지역에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칼라일도 입주를 준비중"이라며 "본토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지방정부가 발벗고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도 지방정부 역시 지난 2009년 3월 모태펀드인 인커 벤처캐피탈(Yinke Venture Capital)을 설립, 성도 지역 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자본금은 15억 위안(약 2500억원)에 달한다.
◆ 북경·상해에서 지방으로 돈이 움직인다
중국 벤처캐피탈은 이제 북경·상해에서 지방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중국 벤처캐피탈들은 북경·상해·홍콩은 포화된 시장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 지방 정부와 손잡고 지역 기업을 육성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DT 캐피탈파트너도 지방 경제의 가능성을 보고 지난해 4월 성도에 진출했다. DT 캐피탈은 5억 달러 규모의 달러 기금과 15억 위안 규모의 인민폐 기금을 운용하는 회사로 '아시아·태평양 최고캐피탈 위원회'로부터 지난해 최고 투자회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DT 캐피탈파트너는 중국의 검색포털업체 바이두(百度), 이베이에 인수된 빌 포인트(Billpoint) 등을 키워낸 기업이다.
성도 지역 DT 캐피탈 양샤오잉(楊曉英) 부사장은 "서부 대개발에 맞춰 지역 기업을 국내 일류 기업으로 키워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풍부한 천연가스 자원을 바탕으로 천연가스 기업에 투자를 시작했고, 바이오·헬스 케어, 식음료 분야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올해 초 인커캐피탈에서 기금을 출자 받은 한국의 KTB투자증권과 한국산업은행도 헬스 및 뷰티케어, 첨단제조업, 신에너지 기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상해에 위치한 스밍투자(世銘投資)는 '88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88계획'은 2015년까지 8개 지역 정부와 합작해 80억 위안의 기금을 관리한다는 것이다. 이미 장쑤성에 위치한 우시(無錫)정부, 궈리엔(Guolian) 사와 함께 펀드를 조성했다. 내년까지 대련, 닝보, 충칭 등 6개 지방 정부와 파트너십을 맺을 계획이다.
우샤오샨(伍少山) 스밍투자(世銘投資) 파트너는 "대련은 2006년부터 2009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이 14% 성장한 인구 600만 명의 잠재력을 가진 지역"이라며 "북경·상해 등 대도시는 이미 포화상태로 경쟁이 적은 지방도시를 눈여겨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 중국에 의한, 중국을 위한, 중국의 벤처투자
지난 2009년 10월 중국판 '나스닥', 차스닥이 문을 열었다. 이를 기점으로 중국 벤처캐피탈의 색깔이 달라졌다. 인민폐 펀드, 즉 중국 위안화로 중국기업에 투자해 중국 증시에 상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기업들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07년 해외 증시에 IPO를 한 기업이 61개, 중국 증시에 IPO를 한 기업이 33개로 해외 증시 상장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금융위기를 거치며 숫자가 역전되더니 지난해 1분기 기준 중국 증시에 상장된 기업은 31개, 해외증시는 9개를 기록했다.
중국 벤처캐피탈은 투자대상을 결정할 때 중국 정부의 입을 바라본다. 중국 정부의 정책 지휘봉에 따라 투자자금이 몰려간다. 중국 정부가 내놓은 5개년 경제계획이 대표적인 투자지침서다. 상해의 아펙스(Apex) 캐피탈글로벌(이하 아펙스) 예펑(葉鋒) 대표는 "중국 정부가 장려하지 않는 분야·기업에 투자해도 별 소용이 없다"며 "정부가 장려하는 부문을 중심으로 수익률이 높은 기업이 투자대상"이라고 말했다.
아펙스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대부분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과 닮은 꼴이다. 생활폐기물·폐수처리 등 에너지절약과 환경관련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예 대표는 “생활폐기물 기업은 중국 정부가 장려하는 분야로 3000위안을 투자해 30만위안을 벌 수 있을 정도로 부가가치가 높다”며 “길거리 광고에 쓰이는 백라이트를 만드는 기업에도 투자하고 있는 데 에너지 절약이 30~40%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우종(吳忠) 인커캐피탈 대표는 모태펀드 설립 배경에 대해 “성도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금뿐 아니라 자금을 제대로 운용할 수 있는 전문적인 투자기관들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이를 통해 서부대개발, 나아가 중국 경제 개발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심있는 투자대상은 “성도 경제발전 방향과 일치하는 산업이라면 어떤 분야든 관심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중국 지방정부가 지역 개발을 위해 제도를 개선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성도의 경우 투자촉진위원회(IPC)를 만들어 투자를 위한 절차를 대폭 간소화했다. 치단(漆丹) IPC 부대표는 “과거에는 외국계 자본이 들어와 펀드를 설립하거나 직접 투자를 하려면 상무국, 공상국, 외환국 등 여러 단계를 거쳐야 했다”며 “IPC가 외국자본을 관리하는 부분을 통합해 투자 절차를 간소화하고 소요 시간을 단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 태양광에서 LED·페수처리 관심…SNS 관련 기업도 유망
투자분야도 점차 진화하고 있다. 전체 사업에 대한 밑그림을 그린 중국은 클린테크의 경우 부품·소재 기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지난해 중국에서 벤처캐피탈이 투자한 817건 중 클린테크 관련 분야는 84건, 5억777만 달러 규모에 달한다.
분야도 태양광·풍력 중심에서 에너지 절약에 초점을 둔 유기발광다이오드(LED) 조명업체나 수처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생활폐기물·폐수처리 분야가 각광을 받고 있다.
중국을 중심으로 투자하고 있는 SAIF Partners의 브랜든 린(Brandon Lin) 파트너는 “지난 2006년 NYC Lighting이라는 국내 조명업체에 투자했다”며 “상장 후 회사 규모가 10배 이상 성장했다”고 소개했다. 브랜든 린 파트너는 “LED는 물론 에너지 절약 조명에 대한 기대가 높다”고 설명했다.
우샤오샨 스밍투자 파트너는 “중국에서 물 부족이 큰 문제로 떠올랐다”며 “SMC는 우시 정부와 함께 폐수처리기업에도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련 정부와 함께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회사도 투자대상으로 물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아직까지 중국의 벤처투자는 인터넷과 이동통신 등 IT 기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올해 1분기 중국벤처투자 연구보고에 따르면 전체 232개 투자 중 45개 이동통신 관련 투자로, 투자금액도 지난 한해 7억1800만 달러 규모와 맞먹는 6억9300만 달러에 달한다. 특히 SNS관련 전자상거래 기업에 대한 투자가 52건으로 과거에 비해 크게 늘었다.
브랜든 린 파트너는 “런런(人人), 웨이보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기업은 이미 가치가 많이 올랐다”며 “이제는 SNS 기업과 함께 사업을 할 수 있는 소셜게임, 소셜커머스 기업 등이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