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 전날 대량의 예금이 인출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저축은행들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영업정지 전날 영업시간이 지난 오후 4시 이후에 예금을 인출했다는 것은 영업정지 사실을 미리 안 영업정지 저축은행 직원들이 자신의 지인 및 VIP 고객들에게 예금 인출을 권유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 저축은행 직원들은 자신의 친척들이 가진 예금까지 무단으로 인출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영업정지 저축은행 전날 마감후 1056억원 예금 인출돼
2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월 영업정지된 7개 저축은행(부산, 부산2, 중앙부산, 전주, 대전, 전주, 보해 저축은행)에서 영업정지 전날 은행 영업을 마감한 이후 총 1056억원의 예금이 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월 17일 영업정지된 부산과 대전저축은행에서는 전날 영업 마감 이후 873건, 242억원의 예금이 빠져나갔다. 이틀 후 영업정지된 부산2, 중앙부산, 전주, 보해저축은행에서도 전날 영업 마감 이후 2403건, 814억원이 인출됐다. 이는 평소보다 3배 이상 많은 규모다.
지난 21일 열린 저축은행 청문회에서 신건 민주당 의원은 "부산저축은행 한 지점의 인출액 통계를 봤더니 영업정지 전날 평소의 3배가 넘는 107억이 빠져나갔다"며 영업정지 사실이 미리 유출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에 영업정지 전날 예금 인출 규모가 공개되면서 신 의원이 제기한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도 저축은행 임직원이 영업정지 사실을 지인이나 VIP고객에게 미리 알렸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지난달 말 부산저축은행에서 예금을 인출한 고객명단을 검찰에 제공했다. 또 금융당국은 부산저축은행의 CCTV 자료를 확보하고 추가 부당 예금인출이 없는지 조사 중이다.
◆일부 직원, 실명확인 거치지 않고 친척들 예금 무단인출
저축은행 임직원들의 직접적인 모럴해저드 사례도 발견됐다. 2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부산저축은행 임직원 10여명은 영업정지 전날 친인척 계좌에서 무단으로 돈을 인출한 혐의를 받고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만약 이 혐의가 사실로 판명되면 금융실명제법 위반일 뿐 아니라 부산저축은행에 고의로 손실을 입힌 것이기 때문에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할 수 있다.
또 금감원은 부산저축은행이 영업정지 전날 밤 부산지역 의료계·법조계 인사들이 포함된 VIP 고객들만 따로 불러 예금을 인출하게 해준 정황을 포착하고 조사를 확대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번 사태에 대해 “영업정지를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가 예금이 묶인 상당수 고객들을 우롱하는 금융기관의 심각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벌어졌다”고 말했다.
◆제대로 감독 못한 금융당국도 문제
이번 영업정지 저축은행 대량 예금인출 사태는 금융당국의 감독 소홀 문제도 크게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은 영업정지 전날인 16일 부산 초량동 부산저축은행 본점에 감독관 3명을 파견했다. 하지만 이들 감독관은 저축은행 직원들의 부당 예금인출을 막지 못했다.
이진복 한나라당 의원에 따르면 영업정지 전날 오후 4시 은행 영업이 마감된 후 예금인출이 계속 일어나자 금융당국은 오후 8시 50분이 되서야 부산저축은행 각 지점에 ‘영업 외 시간에 고객의 예금인출 요청 없이 직원에 의한 무단인출을 금지한다’는 공문을 보냈다. 그러나 불법 예금인출은 공문 이후 오후 9시 30분까지도 계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공문을 보낸 시간은 이미 영업마감 이후 5시간이 흘렀을 때이므로 뒷북이나 다름 없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공문 발송 후에도 예금인출이 계속돼 금융당국의 감독이 소홀했던 게 분명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