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원 입금 확인하셨죠? 취급수수료 30만원 보내주셔야 대출계약이 완료됩니다."
주부 김모(30)씨는 지난해 말 친정어머니 수술비로 급전이 필요해 대출중개업체를 통해 저축은행에서 200만원을 빌리는 과정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금융 지식이 별로 없는 김씨를 대신해 친절하게 대출업무를 알선해주던 중개업체 상담원이 대출 승인 직전 대출금의 15%(30만원)를 취급수수료로 요구한 것이다. 당장 돈이 급했던 김씨로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수수료를 내고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연 29%의 금리로 저축은행에서 200만원을 빌렸는데, 중개업체에 지불한 취급수수료까지 포함하면 실질금리는 연 44%(88만원)에 달했다.
◆10명 중 6명꼴로 대출중개업체 이용
불법 대출중개업체가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대부업체에서 새로 돈을 빌리는 사람 10명 중 6명이 대출중개업체를 통해 대출을 받고 있다. 최근 대부업체나 저축은행들이 중개업체를 거치지 않고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직접대출상품(다이렉트상품)을 출시하고 있지만, 중개업체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다.
대출중개업체는 금융회사에 고객을 연결해주고 금융회사로부터 대출금의 7~10%를 수수료로 받는다. 이는 합법적이다. 하지만 중개업체가 고객들로부터 수수료를 뜯어내는 것은 불법이다. 중개업체는 수수료를 금융회사로부터만 받을 수 있을 뿐 고객에게 받는 것은 법으로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금융회사가 대출중개업자에게 주는 수수료도 결국엔 고객 부담으로 돌아가게 된다. 금융회사 역시 수익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출중개업체가 확실하게 고객을 소개해주는 데다 광고보다도 효과가 좋기 때문에 금융회사들이 대출중개업체와의 관계를 쉽게 끊지 못한다"고 했다.
◆"유리한 조건 찾아준다" 절차 도맡아
이처럼 대출중개업체가 성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자는 휴대전화로 하루에 몇 통씩 문자메시지를 보내오는 대출중개업체에 직접 전화를 걸어 대출 상담을 받아봤다.
대출 신청을 받는 전화번호는 대부분 '070'으로 시작하는 인터넷 전화다. 대출받을 금액을 100만원 단위로 입력하라는 기계음의 안내에 따라 200만원 대출을 희망한다고 접수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전화를 끊은 지 1분이 채 안 돼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고객님, 200만원 대출 문의 주셨죠? ○○금융 상담원 이희주(가명)입니다."
"불법이 아닐까"란 생각에 경계심을 갖고 전화기를 들었지만, 대출중개업체 상담원의 목소리를 듣자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단 5분 만에 대략적인 상담이 끝났고, 대출에 필요한 서류를 오후 2시까지 보내면 당일 바로 입금해준다고 했다. 대형 금융회사 계열의 여신전문회사 상담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간단한 신상 파악을 끝내고, 주민등록등본과 이사 기록이 있는 원초본, 인감, 신분증 사본, 급여통장 3개월 거래내역, 직장의료보험 등의 서류를 팩스로 보내면 대출상품을 연결해 준다고 했다.
수수료를 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별도로 내야 할 수수료는 없다"고 답했다. 통화에 걸린 시간은 5분을 넘기지 않았다. 몇 개 업체에 더 전화를 해본 결과 대부분 비슷한 절차를 거쳤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출 상담과 알선 과정엔 친절하게 '수수료가 없다'고 했다가 대출이 이루어지기 직전에 수수료를 요구하는 것이 불법 대출중개업체들의 상투적인 수법"이라고 말했다.
◆불법 중개업체보다 훨씬 번거로운 직접 대출 절차
반면 대형 대부업체 등에서 운영하는 콜센터에 직접 전화를 걸어 대출을 문의하는 과정은 훨씬 번거로웠다. 인터넷을 통해 상담을 신청하자마자 곧바로 전화가 걸려오는 것까지는 비슷했지만, 당장 전화를 통해 주민등록번호부터 집주소, 직장주소까지 일일이 불러줘야 했다. 또 금융회사에 소속된 상담원들은 항상 자기 회사 상품이 가장 유리하다고 설명하기 때문에 고객 입장에서는 다른 회사 상품과 금리를 비교할 수도 없다. 결국 대출받는 고객의 편의를 고려하지 않는 금융회사들의 불친절과 무능력이 불법 대출중개업체들의 확산을 부추기는 것이다.
고객이 늘면서 중개업체의 전횡도 날이 갈수록 더해가고 있다. 금융감독원 서민금융지원실에 따르면 불법 대출중개수수료 신고 건수는 지난 2009년 상반기에 1102건, 하반기에 2230건, 지난해 상반기에는 3028건으로 반기별로 1000여건씩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