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권 휴넷 이사

미국 경제는 재정적자, 중국의 도전 등 여러가지 난제를 앞에 두고 있다. 특히 경제의 펀더멘털에 해당하는 산업계도 미국만의 경쟁력을 어떻게 회복하느냐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미국 산업계의 경쟁력 회복 논의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는 '아웃소싱'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문제이다. 미국 산업계의 아킬레스건을 직접 건드린 논문은 하버드 비지니스 리뷰 2009년 7-8월호에 게재됐던 '미국 산업경쟁력 부활 전략 Restoring American Competitiveness' 이다.

이 논문은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게리 피사로 교수와 윌리 시이 교수가 함께 쓴 논문이다. 이글은 매우 충격적인 그림으로 시작된다. 미국이 내세우는 하이테크 산업이 2002년부터 급격한 몰락을 가져온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 이유는 경영자들이, 비즈니스 구루들과 월가에서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항상 강조하는 1. 핵심역량에 집중하라 2. 가치 낮은 기업활동은 떼어내라 3. 진정한 경쟁우위 원천인 혁신에 자원을 재배분하라는 말을 그대로 따르면서 아웃소싱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런 아웃소싱의 결과가 초래한 부정적인 영향을 다음 두 가지로 제시한다. 우리 기업의 실상과 비교해 보기 바란다.

첫 번째, 생산 기능의 아웃소싱과 함께 떨어져 나간 혁신 역량

정작 아웃소싱을 하게 되면 단순조립과 같은 생산 공정만 아웃소싱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활동과 연결되어 있는 혁신 역량까지 아웃소싱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애플을 제외한 모든 노트북 생산은 제조뿐만 아니라 디자인까지 아시아에서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 이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

두 번째, 아웃소싱 업체들의 역습 (특히 소프트웨어 산업의 경우)

처음에는 인도에 있는 업체들에게 단순 코드화 작업과 같은 낮은 수준의 기술만 아웃소싱 했는데 그 업체들이 점점 기술을 쌓으면서 갈수록 복잡한 기술을 구현할 수 있게 되었고, 점점 협상력도 커지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경쟁자로 커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요소는 - 저자들이 부연설명을 하지는 않았지만- 아웃소싱 업체들이 자신들의 경쟁자로 둔갑하는 단계를 의미한다. 처음에는 낮은 레벨의 생산기지 역할을 하다가 숙련도와 개선작업이 누적되면서 혁신을 하게 되고 점차 교섭력이 커지면서 경쟁자로 커가는 모습을 쉽게 그려볼 수 있다.

물론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 아웃소싱이 전략적으로 위험 요인이 될 때 언제든지 업체를 대체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간과하고 있는 점은 산업구조적인 측면이다. 저자들은 이 아티클에서 “industrial commons’라는 개념을 소개하고 있다.

◆ ‘산업의 공유지 Industrial commons’

원래 commons는 말, 양과 같은 가축들을 공동 관리하기 위한 공동 목초지를 말한다.(위키피디아의 유사개념 참조 http://bit.ly/9pzplV, 참고로 영국에서 14, 15C에 공동소유토지(Commons)에 말뚝 박고, 울타리 만들고 사유화(enclosure)하면서, 생산성이 급증했다.)

본 논문에서는 산업간에 공유하고 있는 집단 역량, 기업과 대학 사이에 산학협력을 통해 형성된 공동의 지식이나 벤처투자자 등을 의미한다. 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지역적으로 묶여있다는 점이다. 즉, 지식자원의 특성상 거리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글에서는 SCM(Supply Chain Management, 공급사슬망 관리)상의 모든 기업활동에는 관련된 지식의 생성, 누적, 진화 발전이 뒤따르게 되는데 이런 지식이 아웃소싱과 함께 기업 외에서 일어나게 되니 정작 기업 당사자들은 새로운 지식/혁신의 창출에 대해서는 손을 놓을 수 밖에 없다는 논리로 아웃소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Industrial commons에 대한 유사한 개념으로 국가 또는 산업의 경쟁력을 분석하는 전략적 분석기법을 선 보인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포터 교수는 그의 다이아몬드 이론에서 Industrial commons라는 개념을 관련 및 지원산업 (Related and Supporting Industries)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관련 및 지원산업’에 대한 연구가 발전된 것이 바로 클러스터(Cluster) 연구다. 같은 맥락에서 아래 논문을 살펴 보면 인식의 깊이를 더 할 수 있다.

이렇듯 Industrial commons은 새로운 개념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아티클을 통해 우리 경영자들 입장에서 눈 여겨 봐야 할 부분은 아웃소싱과 Industrial commons와의 관계다. 글로벌 아웃소싱 차원에서 봤을 때 중국, 동남아, 인도 등은 각각 생산을 포함한 특정 산업의 다양한 아웃소싱 기지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다.

그런데 지식자원의 특성상 지리적 거리가 가깝다는 환경적 특성은 언제든지 새로운 혁신의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으며, 각 정부와 지역 대학들이 이러한 지식의 새로운 창출을 촉진시키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 아웃소싱에 대한 전략적 대안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 아웃소싱을 해당 기업에 국한된 문제로 바라보면서 기업이 가지고 있는 협상력으로 얼마든지 아웃소싱 업체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렇지만 먼저 아웃소싱을 수행하는 기업 입장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 지를 살펴본다면 좀 더 세심한 체크리스트를 얻을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 아웃소싱 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낮춘다는 것은 대체 가능한 업체를 많이 관리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아웃소싱 업체 입장에서는 적은 마진으로 치열한 경쟁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아웃소싱을 수행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첫 째 생산측면에서 다양한 부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요구하게 된다. 즉 아웃소싱의 범위를 확대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둘 째 디자인 측면에서 살펴봤을 때, ODM(Orginal Design Manufacturing) 업체는 자체 브랜드 제품을 출시하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혁신 측면에서는 process-engineering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혁신을 거듭하게 된다.

여기서 잠시 프로세스 엔지니어링 전문가들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 아티클에서 저자들은 부가가치가 높은 디자인이과 혁신에만 집중하고 생산기능을 아웃소싱하는 미국 기업들을 호되게 나무라고 있다. 제품과 프로세스 혁신은 상호 연결되어 있는 불가분의 관계인데 생산 프로세스를 아웃소싱 하다 보니 제대로 된 혁신적인 제품이 나올 리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프로세스 혁신을 담당하게 되는 프로세스 엔지니어링 전문가들이 생산 거점의 이전에 따라 같이 이동하게 되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까지 이동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혁신 역량까지 이전하게 되니 미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자명하다고 주장한다.

아웃소싱의 함정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많은 기업들이 아웃소싱을 결정할 때에 혁신적 상품과 프로세스 혁신, 그리고 생산이 하나로 묶여져 있다는 점을 쉽게 간과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게 되기도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이런 기업들이 많아지게 되면서 결국 앞서 언급한 industrial commons의 기반이 무너지게 되어 결국 갑작스러운 산업의 침체를 맞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것이다.

그림에서처럼 2002년에 미국 첨단 산업의 무역 수지가 갑작스럽게 적자로 돌아서게 되고 이후 계속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인 이유가 바로 개별 기업들의 적극적인 글로벌 아웃소싱으로 Industrial commons의 기반이 무너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아웃소싱의 이중성을 염두에 두고 정부 차원과 기업 차원에서의 솔루션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먼저 정부 차원에서 취할 수 있는 솔루션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개별 기업이 하지 못하는 기초, 응용과학 연구에 대한 산학협동 프로그램 등의 지원 전략 외에 ‘대마불사론’(TBTF, Too Big Too Fail)에 대한 혹독한 논평이다. 쓰러져 가는 GM본사와 같은 거인들은 죽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GM본사는 AIG와 City 그룹처럼 어쩔 수 없는 복잡한 글로벌 경제로부터 영향을 받았거나 국가 보안이라는 이슈가 있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경영 관리상의 문제이기 때문에 협력업체의 연쇄 도산 같은 핑계를 들어주지 말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GM본사는 평소에도 협력업체들을 제대로 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협력업체를 운운할 자격이 없을 뿐더러 오히려 미국에서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미국인들을 위한 일자리를 창출시키고 있는 경쟁 자동차 기업들을 역차별하는 조치라면서 경쟁사들을 일일이 언급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언급되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쉽다.)

이런 강성 발언 때문일까. 2010년 5월 5일, 미국 상원은 대마불사 관행을 척결하는 수정안을 통과시킨다. (인사이트 지식사전, pp.161-164 참고)

기업차원에서의 솔루션은 기업 경영 현실을 비춰봤을 때 어느 것 하나 쉽지 않기 때문에 모두 경영자들의 결단을 요구한다.

첫 번째로 음료시장 정도를 빼면 마케팅 효과가 없기 때문에 마케팅에 더 이상 신경 쓰지 말고 애플, 인텔, 코팅, 아마존, Applied Materials와 같은 기업과 같이 제품 혁신을 통한 경쟁우위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두 번째로는 더 이상 단기 실적을 선호하는 주식시장 때문에 어떨 수 없이 장기적인 R&D를 못했다(Devil-made-me-do-it)는 식의 변명을 내세우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장기적인 실적에만 집중하겠다는 메시지를 1997년부터 일관되게 전달한 아마존닷컴의 예를 들었지만, 절대적으로 주식시장(주주)의 영향력이 큰 미국 기업과 다른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는 한국기업 입장에서는 체감 온도가 다를 수 밖에 없다.

세 번째는 R&D에 대한 평가에 너무 재무적인 잣대를 대지 말라는 것이다. R&D는 어차피 불확실성에 대한 투자이기 때문에 재무적인 평가는 경영자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R&D 결과물에 대해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한다.

R&D 성과물이 기업의 주력사업과 관계 없으면 평가절하하면서 투자를 줄인 Bell Lab과 Xerox PARC의 실패 사례와 다양한 R&D 성과물을 허용한 IBM과 Corning의 성공사례를 들어 오히려 진정한 혁신은 주력사업과 거리가 먼 혁신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다면서 R&D에서 기회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회사 책임으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섯 번째는 연구소/연구부서를 외로운 섬으로 만들지 말고 회사의 방향과 같이 가게 해야 하며, IBM의 ‘급진적 협업 radical collaboration’ 모델처럼 회사 밖의 파트너들하고도 연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술을 잘 아는 경영진을 두어야 한다는 것으로 제언을 마친다.

◆ 애플이 주는 시사점과 관전 포인트

저자들은 애플 사례를 주목하고 있다. 애플은 본인들의 경고에는 아랑곳 하지 않는 듯 노트북 iPod, iPhone등의 생산을 아웃소싱하고 있다.

이런 애플이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제품 콤포넌트에 대한 선별 능력, 산업 디자인 역량, 소프트웨어 개발역량, 그리고 제품의 컨셉과 유저들의 요구를 어떻게 해결하는 지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역량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들은 이런 애플의 아웃소싱 전략이 언제까지 유효할 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