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증권사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겠습니까? 안 걸리면 다행이죠."(A증권사 관계자)

최근 A증권사 여직원이 무려 160억원에 달하는 고객 돈을 횡령해 달아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직원은 수십 차례에 걸쳐 고객에게 가상납입증명서를 보여주고 돈이 계좌에 입금된 것처럼 속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A증권사는 이 같은 사실을 적발하고도 금융감독원에 보고하지 않고 숨기는 데만 급급했습니다. 다행히 A증권사는 달아낸 여직원을 얼마 후 붙잡아 횡령금액의 대부분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A증권사 관계자는 "횡령금을 회수했으니 금감원이나 투자자들에게 관련 사실을 보고하지 않은 편이 오히려 낫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도 "횡령금을 회수할 가능성도 있는데 바로 금감원에 보고하거나 공시했다가 고객들의 신뢰에 금이 가면 큰일"이라며 "증권가에선 소규모의 횡령사건은 비일비재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A증권사가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상장법인이기 때문에 이런 횡령사건이 발생할 경우 즉시 금융감독 당국에 보고하고, 횡령 사실을 투자자들에게 공시해야 하는데도 이를 준수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만약 횡령금을 회수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증권사들의 횡령사건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B증권사 서초지점 직원은 지난 2005년 8월부터 2009년 4월까지 개인 채무를 갚고자 투자자 10명을 상대로 27억여원을 가로채고 3억원을 차용하면서 고객 소유 주식을 멋대로 담보로 제공해 횡령했습니다. C증권사 직원은 고객 위탁 증권 27만주(112억원 상당)를 자신의 계좌로 빼돌리고, 정상적인 금융거래로 가장하기 위해 몸담고 있는 증권사의 유가증권취득확인서를 위조하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D증권사 전 대표는 채권에 투자하겠다며 한 기업체 자금 200억원을 맡아서 굴리다가 해당 기업의 허락도 받지 않은 채 고위험 상품에 투자해 대부분을 날리는 바람에 구속됐습니다.

크고 작은 횡령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증권사 스스로 더 엄격하게 내부 규제를 하고, 금융당국도 감독을 강화해야 합니다. 횡령 사건이 끊이질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증권사의 도덕적 해이(解弛)가 심각하다는 뜻도 됩니다.

그런데도 증권사가 횡령사건에 대한 보고를 안 할 경우 금융당국이 엄격하게 제재를 하지 않고 그저 주의나 경고를 주는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런 솜방망이로 과연 증권사의 도덕적 해이를 퇴치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