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계는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체감했다. 미국일본은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더운 여름을 지냈고, 우리나라도 10년 이래 최악의 열대야가 온 국민을 녹초로 만들었다. 북반구 대부분이 숨막히는 더위에 시달렸다. 에어컨 사용량이 폭증하면서 전력사용량이 연일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하지만 에어컨은 온실가스 배출량의 10%를 차지하는 온난화 주범 중 하나. 더위를 피하려 에어컨을 켜면 미래엔 더욱 뜨거운 여름을 피할 수 없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끄면 당장 덥고, 켜면 미래가 더워지는 모순. 온실가스 배출을 걱정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켤 수 있는 친환경 에어컨은 없을까. 학계와 가전업계에서는 친환경 에어컨을 찾기 위한 새로운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에어컨, 끄자니 덥고 켜자니 미래가 더 덥고

기체가 압축돼 액체로 변했다가 급속하게 팽창·기화하는 과정에서 주위의 열을 흡수하는 것이 에어컨의 기본 원리다. 이때 사용되는 기체를 냉매라고 한다. 문제는 냉매로 주로 사용되는 프레온 계열 가스들이 지구 오존층을 파괴하는 대표적인 온실가스라는 점이다.

친환경 에어컨 연구는 그래서 기존의 에어컨이 사용하던 냉매를 온실화 정도가 낮은 다른 기체로 대체하는 쪽에 집중되고 있다. 대안적인 냉매의 대표주자 중 하나가 이산화탄소다. 이산화탄소 역시 온실가스의 하나이지만 지구의 오존층을 파괴하는 정도가 기존 프레온 계열 기체와 비교하면 3000~400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이산화탄소를 이용한 에어컨은 작동과정에서 나오는 열을 활용해 난방이나 온수 공급에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프레온의 경우 에어컨 내부에서 압축됐을 때 온도가 섭씨 60도 정도까지 상승하지만 이산화탄소는 100도 이상으로 올라간다.

이 정도 온도면 전기나 가스를 따로 사용하지 않아도 온돌을 덥히고 물을 데우기에 충분하다. 난방과 급수에 드는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 온실가스를 줄이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일부 업체들이 이산화탄소를 이용한 냉·난방기를 내놓기도 했다.

냉매 대신 암모니아와 물을 이용하는 에어컨도 대안 가운데 하나다. 사실 암모니아와 물을 이용하는 냉방기는 프레온을 냉매로 사용하는 에어컨이 개발되기 전에 사용됐던 고전적인 에어컨이다. 하지만 암모니아는 프레온 계열 냉매보다 냉각 효율이 떨어져, 같은 냉방효과를 내려면 설비의 덩치가 커야만 하는 단점이 있었다. 이 때문에 암모니아 에어컨은 병원이나 대학 등 대형건물에만 사용할 수 있었다.

미국 조지아텍 연구팀은 암모니아 에어컨의 덩치를 줄일 '마이크로 열교환기'를 개발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마이크로 열교환기는 지름 0.5㎜의 관으로 구성된 것으로, 책 한 권 크기에 300W의 냉방 효율을 낼 수 있다.

◆프레온 대신 이산화탄소 쓰는 에어컨 연구…난방에도 활용 가능해

아예 냉매를 사용하지 않는 에어컨을 개발하려는 연구도 활발하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연구팀은 음파를 사용한 에어컨을 개발 중이다. 연구팀은 오디오의 스피커처럼 앞뒤로 진동하며 음파를 만들어내는 기계로 헬륨 가스를 진동시킨다. 고유 주파수에 가까운 음파로 진동시키면 공진(共振)현상이 나타나면서 발열·흡열현상이 일어나는 기체의 특성을 활용한 것이다. 헬륨은 지구온난화와는 무관한 친환경 기체에다 안전하기도 하다.

다만 이런 대안적인 에어컨들은 효율 면에서 아직 기존의 에어컨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이산화탄소를 이용한 에어컨은 냉매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기존 에어컨보다 대략 4~5배의 압력이 필요해서 이를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기기를 튼튼하게 만들려면 제조비용이 그만큼 더 든다. 헬륨을 이용한 에어컨 역시 효율이 낮아서 약 16㎡(5평) 정도를 냉방할 수 있는 수준(3.5㎾)의 에어컨 대당 가격이 400만~500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일반 에어컨가격의 10배 수준이다.

국내외에서 연구되고 있는 열전도(熱傳導) 에어컨도 마찬가지다. 금속의 열전도를 이용한 이 에어컨은 냉매나 실외기가 필요 없어 가장 친환경적이다. 이 역시 효율이 크게 떨어지는 데다 직류전기를 사용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자동차용 냉장고나 화장품 보관용 냉장고 등 배터리를 전원으로 사용해 밀폐된 작은 공간을 냉방하는 용도로 주로 쓰인다.

현재 세계 가전업계는 앞서 소개한 것과 같은 대안적인 에어컨들을 연구하는 동시에 기존 냉매형 에어컨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LG전자 에어컨연구소 박내현 책임연구원은 "주위 온도가 높으면 압축기가 빨리 돌아가고 온도가 낮으면 천천히 돌아가 전기를 아낄 수 있는 제품들이 대표적인 에너지 절약형"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에어컨은 주위 온도가 높으나 낮으나 압축기가 항상 일정한 속도로 돌아가 전력 낭비가 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