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한 침체에서 벗어나 경기 회복 국면에 접어들면서 각 국가에선 출구전략이 이슈가 되고 있다. 적절한 시기에 출구전략을 쓰지 못할 경우 물가 급등과 자산시장 버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이때 출구전략 시행의 판단기준이 되는 것 중 하나가 인플레이션이다.
한데 인플레이션은 헤드라인 인플레이션과 근원 인플레이션으로 나눌 수 있고, 통화정책을 통한 출구전략 시 근원 인플레이션이 더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이용되고 있다.
근원인플레이션이란 소비자물가지수 등의 인플레이션 지표에서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것을 말한다. 이 개념이 도입된 것은 지난 1973년 아랍의 석유 금수 조치에 따른 유가 파동 직후다.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었던 아서 번즈는 일시적인 유가 급변으로 인해 통화정책이 부적절한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판단 하에 에너지와 식료품 등 단기간에 가격 변동이 큰 요소를 제외한 인플레이션 지표를 새로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각국의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장기적인 물가는 통화량과 비례하기 때문에 물가가 높아지면 통화량을 줄이고, 물가가 낮으면 통화량을 늘리는 식으로 물가를 조정하게 된다. 그러나 유가가 갑자기 오른다거나 작황이 나빠 식료품 값이 뛰거나 하면 통화량과 별개로 물가가 오르게 된다. 이때 단순히 물가가 오른다고 긴축 통화정책을 시행하게 되면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다. 심할 경우 일시적 물가 변동이 사라진 후 디플레이션에 빠져들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단기적으로 심한 가격 변동성을 보이는 유가와 식료품을 제외하여 좀 더 통화량과 긴밀한 움직임을 보이는 근원인플레이션이란 개념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근원 인플레이션을 기준으로 볼 때 미국의 출구전략은 아직 먼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2%,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ore CPI)는 0.9%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근원 소비자물자지수의 경우 45년래 가장 낮은 상승 폭을 보여 오히려 디플레이션 우려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폴 크루그만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있다며 출구전략보다 경기부양책을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5월 보고서에서 현재 디플레이션 발생 위험이 가장 큰 나라로 일본과 미국을 꼽기도 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근원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은 소비자물가가 올해 상반기에는 2.5%, 하반기에는 2.7% 오르고, 내년에는 3.3%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올해와 내년의 근원 인플레이션은 각각 1.8%와 3.1%로 전체 소비자물가보다 더 큰 격차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HSBC 은행 역시 지난 5월 "원자재 가격 인상과 시장 수요 증가로 지난달 제조업 상품의 공장도 가격이 오르는 등 코어 인플레이션 조짐이 처음 나타났다"며 "한국은행이 긴밀히 주시해야 해야 할 것이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연방준비이사회가 사실상 올해 금리인상 가능성을 배제한 것과 달리 한국에서 기준금리 인상이 머지않았다는 전망이 계속 나오는 것은 이런 근원 인플레이션의 상반된 양상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