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벤처투자 비리(非理)가 도마 위에 올랐다.
산업은행의 출자지원을 받은 코스닥 등록 벤처기업 53개 업체 중 30%가
넘는 16개 업체가 대주주 비리 등의 혐의로 당국의 조사를 받은 사실<
본지 13일자 1면 보도 >은 산업은행의 심사능력뿐 아니라 도덕성에도 큰
의문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산업은행 벤처투자업체 중 코네스는 전 대표 이모(37)씨가 회사자금
8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지명수배 중이며, 지한정보통신과 콤텔시스템은
사장이 공무원과 은행직원·벤처투자기업 대표 등에게 뇌물을 준 혐의가
적발됐다. 또 산업은행이 2억원을 투자한 동신에스엔티는 유력 정치인의
사위에게 부당 이득을 준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이들 16개 업체와는 별개지만 산업은행의 자금지원을 받은 기업 중에는
'정치권의 자금줄' 역할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곳도 있다.
산업은행의 벤처투자 책임자이던 P모 이사는 김대중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씨와 최규선씨에게 약 11억원의 뇌물을 준 대원SCN에 산은 자금
110억원을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의 P모 이사는 산은이 각각
16억원씩을 지원한 벤처기업 2개사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지난 3월
구속됐었다.

산업은행의 이런 문제는 과거 기간산업과 중소기업 등에 장기 저리자금
지원만을 해오던 산업은행이 현 정부 들어 벤처기업 투자에 손을 댈
때부터 잉태된 것이란 지적이다. 성신여대 경제학과 강석훈 교수는
"산업은행의 벤처투자 부실은 국책은행인 이 은행이 생면부지의
사업영역인 벤처투자에 진출하면서부터 어느 정도 예고된 일이었다"고
말했다. 벤처 육성을 공약했던 현 정부는 산업은행의 자금을
벤처기업으로 돌리기 위해 지난 98년 3월 '벤처기업투자펀드
취급지침'을 만들어 그동안 290개 업체에 2860억원을 투자했다.

산업은행 박병호 벤처투자팀장은 "벤처투자를 할 때 대주주의
개인비리까지 사전에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벤처캐피털 등이 벤처투자를 할 때 가장 중요시 여기는 항목이
경영자(대주주) 평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산은이 책임을 벗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산업은행은 또 투자에 대한 사후관리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국의 조사를 받은 코스닥 등록업체 16개사에 대해 감사나 시정요구
조치를 한 경우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2일 산업은행측은
감사 및 시정요구 건수에 대한 질문에 대해 답변을 거부하면서 "코스닥
등록 기업은 금융감독원에서 감독하고 있다"고 책임을 떠넘겼다.

한나라당 이성헌 의원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정책적 목표 달성이
아닌 정치적 커넥션에 의해 벤처업체를 부당지원해왔다는 의혹에 대해선
반드시 사실규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보증권 임송학
투자전략팀장은 "산업은행은 지금이라도 '외도(外道)'를 중단하고
본업(기간산업 지원)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은행 노융기
공보팀장은 "벤처비리는 산업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라 99~2000년
벤처거품의 후유증"이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