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클럽]남북화해를 기원하며

조선일보
입력 2000.06.15 17:12



■ 오늘의 한반도: 남북화해를 기원하며


□ 죽의 장막이 열리던 날

남북 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중국이 죽의 장막을 열어 젖히던
시기를 연상하게 됩니다. 72년 2월 17일 당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북경(北京:베이징) 수도공항에 발을 디딤으로써 중국의 세계무대
데뷔가 시작됐습니다. 비행기 트랩아래서 닉슨 대통령을 영접한
사람은 주은래(周恩來:저우언라이) 총리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기 직전 트랩 아래서
기다리고 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마주보며 박수를 쳤던 모습과
흡사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공항과 연도를 지나면서 받은 환대의 정도는 닉슨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 서로 달랐습니다. 키신저 당시 국무장관의 증언을
빌리면, "궁색할 정도로 초라한"환영을 받았던 반면, 김대중
대통령은 국빈 이상의 환대를 받았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평양시민 40만명 쯤 나온 것 같다'고 공언할 정도로 북한으로서는
자부심을 갖고 성대하게 환영 준비를 한 것 같습니다. 북한은 공식
환영인파를 60만명이라고 했습니다.

닉슨이 북경을 방문하기 3년 전 쯤 양국이 화해 가능성을 모색하기
시작했다니, 98년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던 장면도 생각납니다. 그해 말부터 금강산 방문길이 열렸습니다.
닉슨 방중에 앞서 71년 핑퐁외교와 키신저의 방중이 '소떼몰이'와
'금강산 관광'이라는 사전 정지작업과 비견될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미중 양국도 당시 그랬지만, 남북한도 이런 계기가
있기 전에는 공식 교류가 거의 없었습니다.

□ 미중과 남북한

미중은 닉슨 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상해 코뮈니케(공동성명)라는
결과물을 내놓았습니다. 이는 어찌 보면 향후 양국 관계의 지속을
담보하는 작은 씨앗이었습니다. 남북한 정상회담도 앞으로 어떻게
마무리될 지 모르지만 적어도 긴장완화와 이산가족 교류, 대화기구
상설 같은 화해와 평화의 씨앗 정도는 뿌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 국민들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놀란 것은 TV 화면에 나타난
김정일 위원장의 색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아버지의 후광을 이용해
부자세습으로 권좌에 오른 '준 망나니' 정도로 인식돼왔던 그의
이미지가 크게 수정 돼 가는 것 같습니다. 소위 '김정일 쇼크'라는
말까지 등장했습니다.

닉슨 대통령이 처음 모택동(毛澤東:마오쩌둥)을 만났을 때도
모택동에 대해 무지하기는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닉슨과
키신저는 모택동의 대단한 카리스마에 놀란 듯 합니다. "그는 상대를
꿰뚫어보는 듯하면서도 약간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방문객을
응시했다. 그의 태도는 인간의 약점과 표리부동을 간파하고 있는
나를 속이려 해봐야 소용없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드골은 예외일 지
모르지만, 나는 이제껏 이런 의지력을 가진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칸의 제국' 인용)

미중 관계는 닉슨 방문이래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중국관을
둘러싸고 미국 내부에서 한바탕 진통을 겪었습니다. 대중
화해론자와 강경론자들이 힘싸움을 한 결과 강경파 슐레진저
국방장관이 화해파 키신저 국무장관에게 밀려나는 모양새로 일단
정리가 됐습니다. 76년 9월 모택동의 사망으로 양국관계는 잠시
악화됐지만 결국 79년 1월 1일 양국은 수교하게 됩니다. 같은 달
28일 등소평(鄧小平:덩샤오핑) 국무원 부총리는 미국을 방문합니다.


미국과 중국이 관계정상화에 성공한 것은 당시 소련을 적으로
공동전선이 형성된 국제 정세변화가 가장 큰 동인이었던 같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냉전이 한창 무르익던 시기로, 탈냉전 시대인
지금과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또 90년 남북예멘과 동서독 통일에
이어 전세계적으로 냉전청산의 분위기가 형성돼있는 요즘입니다.

□ 김정일 쇼크와 기억할 것들

미중이 수교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대만문제였습니다. 남북한
관계회복의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일까요. 북한은 적어도
주한미군을 꼽지 않을까 싶습니다. 공교롭게도 모두 미국과 연관된
문제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협상 한 두 번으로 깨끗이 정리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대만 문제가 지금도 미중
관계의 가장 큰 쟁점인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얘기 두서가 없어졌습니다만, 이번에는 남북한이 뭔가 전향적인
성과를 이루어냈으면 합니다. 서독의 동방정책을 추진한 빌리
브란트와 에곤 바가 한 일을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잇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화해와 화합 분위기에 매몰돼 과거를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는 절대 발목을 잡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김정일 쇼크'가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남북화해가 아무리
급하더라도, 지난 4~5년간 북한 땅에서 200만명이 굶어죽었다는
사실과 지금도 중국 땅에 10만명의 탈북자가 떠돌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남북한 주민 126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6.25도 그렇습니다. 김정일의 해맑은 미소와 활달한 언변,
시원시원한 행동을 그저 '기분 좋은 쇼크'로 웃고 넘겨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呂始東드림 sdyeo@chosun.com



■ 중국어 한마디


韓國前總統盧泰愚說,
他會盡自己的力量推動韓國政府和企業參與西部大開發.

Han(2)guo(2) qian(2) zong(3)tong(3) Lu(2)tai(4)yu(2) shuo(1),
ta(1)hui(4) jin(4) zi(4)ji(3) de li(4)liang tui(1)dong(4)
Han(2)guo(2) zheng(4)fu(3) he(2) qi(3)ye(4)
can(1)yu(4) xi(1)bu(4)da(4)kai(1)fa(1).

한국 전 대통령 노태우씨는 자신의 능력을 다해 한국정부와 기업이
서부대개발에 참여하도록 추진하겠다고 말했습니다./신화통신 6월
11일 보도.

(중국을 방문중인 노 전대통령이 이날 저녁 사천성 정협주석
섭영귀와 회견하면서 이 말을 했다고 합니다. 노 전대통령은 '8년 전
처음 중국을 방문했을 때와 비교해볼 때 중국의 발전이 아주 빠른 것
같다'고 말했답니다. 92년 북방외교의 일환으로 중국과 수교를
이룩한 자신의 업적을 은근히 회상하는 듯 합니다. 반면 중국은
어떻게 해서든 한국의 투자를 끌어내려 안달인 것 같습니다.
이럴수록 중국 서부 투자에 보다 신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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