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의 창업 아이템 중 하나인 ‘커피숍’이 작년 한해 동안 1500개 넘게 줄어든 것으로 22일 나타났다. 지난 1964년 커피숍을 독립된 통계 항목으로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 60년 만에 처음으로 ‘전년 대비 감소’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현상은 커피숍 매출 감소와 커피 원두 가격 상승이 맞물린 상황에서 일어났다.
◇ 해마다 수천 개 늘던 카페, 작년엔 1500개 넘게 줄어
22일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인허가데이터에 따르면 작년 말 국내 커피숍은 7만9350개로 집계됐다. 한 해 전인 2023년 말(8만876개)보다 1526개가 감소한 것이다. 이는 국세청에 업태를 커피숍으로 등록한 업체를 분석한 것이다.
커피숍은 1990년대만 해도 전국에 1000개도 되지 않았지만 2000년대 들어 폭발적으로 늘었다. 2001년부터는 한 해에 수백개씩 늘어나더니, 2008년부터는 1000개 넘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특히 2021년에는 커피숍 1만6338개가 신규 창업되고 8692개가 폐업하며 한 해 동안 7646개가 늘었다. 업계 관계자는 “1999년 스타벅스 1호점이 이화여대 앞에 문을 열면서 커피숍 증가에 불이 붙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커피숍 증가 추세는 2023년부터는 꺾이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해 커피숍 1만2435개가 폐업하면서 전년 대비 증가는 10개에 그친 것이다.
게다가 다음 해인 2024년에는 커피숍 폐업은 1만2246개였는데 개업은 1만720개에 그치면서 전년 대비 1526개(1.9%)가 감소했다. 지난 1964년 커피숍 통계를 별로 작성하기 시작한 뒤로 전년 대비 감소는 이번이 처음이다. 같은 기간 전체 자영업자 수는 2841만명에서 2857만명으로 0.6% 늘었다. 커피숍 창업이 전체 자영업 평균보다 부진한 셈이다.
커피숍 감소 현상은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2월까지 커피숍 창업이 1294개, 폐업이 1503개로 전체적으로 209개가 감소한 상태다.
◇ 작년 4분기 커피숍 매출 9.5% 줄어… 원두값은 5년 만에 3배로 뛰어
커피숍 감소 현상은 매출 하락과 원두 가격 상승이 맞물린 상황에서 벌어졌다. 한국신용데이터에 따르면 작년 4분기 전체 커피숍 매출액은 전분기보다 9.5% 줄었다. 같은 기간 패스트푸드점 매출은 1.8%, 주점 매출은 1.7% 감소하는 데 그쳤다. 앞서 전체 커피숍 매출액은 2019년 11조700억원에서 2022년 15조5000억원으로 40% 늘어난 바 있다. 한국신용데이터 관계자는 “커피는 굳이 안 마셔도 되는 기호 식품인 탓에 불경기 영향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커피 원두 가격이 오르면서 커피숍의 비용 부담도 커지고 있다.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2020년 1파운드(약 450g)에 111원 수준이었던 아라비카 원두 가격은 현재 372원으로 3배 이상으로 뛰었다. 아라비카 원두 주요 생산국인 베트남과 브라질에서 이상기후로 커피 흉작이 이어진 탓이다.
한 원두 업체 대표인 강모(59)씨는 “지난해만 (커피숍에 공급하는) 소매 가격을 3~4번 올렸고, 올해는 1월 1일부터 20% 정도 가격을 올렸다”라고 말했다. 그는 “원두를 공급받는 커피숍 사장들은 죽는 소리를 하는데, 원두 가격이 미친듯이 오르니 우리도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작년부터 지금까지 폐업한 거래처 커피숍만 30곳이 넘는다”라고 했다.
서울 송파구에서 5년간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43)씨는 “비용 상승을 견디기 힘들어 모든 메뉴 가격을 작년에 200원, 올해 200원씩 올렸는데 매출액은 재작년보다 계속 적게 나온다”며 “다른 사업을 할지, 원두가격이 안정화될 때까지 버틸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또 인근 한 카페의 점주는 “5~10년 전에는 커피숍이 정말 할 만 해서 주변에도 권했다”면서 “요즘은 주변에 퇴직한 친구들이 ‘나도 커피숍 하나 차릴까’라고 물으면 뜯어 말린다”고 했다.
한편 커피숍에서 노트북을 켜놓고 장시간 공부를 하거나 업무를 보는 ‘카공족’이 고객 회전율을 떨어뜨려 커피숍 매출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9년 한국외식산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개인 카페 기준으로 4100원짜리 커피 한 잔을 구매한 손님이 매장에 1시간 42분 넘게 머무르면 가게는 손해를 보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전기 콘센트를 막아 놓는 커피숍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 성수동과 송파구 ‘송리단길’ 카페 25곳을 확인한 결과 11곳이 작년과 올해 사이 콘센트를 막았다. 성수동에서 4년째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는 40대 남성 김모씨는 “손님 한 명이 커피 한 잔 시켜놓고 4인 테이블에 3~4시간씩 앉아 있으면 가게를 유지할 수 없다”면서 “콘센트를 막았더니 손님들이 가게에 머무는 시간이 줄어 매출이 눈에 띄게 회복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