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마지막 판자촌’이라고 불리는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개발을 앞두고 일부 거주민들이 불법으로 망루를 설치하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요구는 새 아파트를 받게 해달라는 게 아니다. 그대신 땅을 싼 값에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구룡마을 개발을 추진하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망루 농성을 하고 있는 거주민들은 아파트 분양권이나 토지 매입권을 받을 자격 자체가 없다는 입장이다.
◇구룡마을에 아파트 3520세대 건설 추진… 일부 거주민 ‘불법 망루 시위’
27일 경찰과 강남구 등에 따르면 구룡마을 일부 거주민들은 지난 23일 오후 6시쯤 구룡마을 입구에 10m 높이의 철제 구조물(망루)을 세웠다. 구청 등으로부터 허가는 받지 않았다. 경찰은 24일 오전 3시20분쯤 망루를 설치한 6명을 도시개발법 위반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구룡마을 거주민 200여 명은 24일 0시 20분쯤부터 6시간 동안 서울시와 강남구에 ‘거주 사실 확인서’ 발급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였다. 일부 거주민은 망루에 올라 텐트를 설치하기도 했다. 이들은 서울시가 대화에 나설 때까지 농성을 벌이겠다는 계획이다.
◇무허가 판잣집 거주민 400세대, 임대주택 받지 않고 다른 보상 요구
서울시는 구룡마을에 25층 규모 3520세대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지난 5월 발표했다. 최근 불법 망루 농성을 벌이고 있는 주민들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보상안으로 제시한 임대주택 이주에 응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강남구청에 따르면 구룡마을 1107세대 중 708세대(64%)는 임대주택 이주를 마쳤으니, 나머지 400세대가 다른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시가 구룡마을에 아파트 조성을 추진하면서 임대주택 이주를 진행한 것은 구룡마을 무허가 판잣집에 살아 온 주민들은 아파트 분양권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토지보상법에 따르면 무허가 건축물 거주자라도 1989년 1월 24일 이전에 실거주했다면 분양권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강남구청에 따르면 ‘구룡마을 도시개발구역 지정을 위한 주민 열람 공고일’인 2015년 5월 15일 기준으로 무허가 거주 1107세대 중 분양권을 받을 수 있는 것은 1세대뿐이다.
아파트 분양권이 없는 구룡마을 거주민들은 임대주택 이주를 하지 않으면서 ‘땅을 싸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이주대책에 따라 해당자에게 이주택지 등을 공급하는 경우에는 조성원가에서 생활기본시설의 설치비를 차감한 가격으로 공급한다’는 국토교통부훈령 제1279호 도시개발업무지침을 근거로 이같이 주장한다. 이 훈령에 따라 주민들이 토지를 조성원가에 매입하려면 기준일인 1989년 1월 24일 이전부터 구룡마을에 살았다는 거주사실 확인서가 필요한데, 강남구청이 발급해주지 않자 농성을 벌이는 것이다.
이들은 구룡마을 땅 일부를 조성원가에 구매한 뒤 건물을 짓겠다는 계획이다. 이후 시공사를 선정하고 투자를 받아 주택 등 건물을 세워 거주를 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구룡마을 초입에 있는 주상복합 부지를 매입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설령 이들에게 아파트 분양권을 준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유귀범 구룡마을 지역주택조합(지주택) 추진위원장은 지난 25일 “아파트 분양권이 아무리 싸게 나와도 20억원 안팎일 것이어서 (무허가 거주민 형편상) 들어갈 수도 없다”며 “5년 정도 되는 전매 제한 기간을 채울 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SH·강남구 “불법 망루 시위 거주민들은 땅 받을 권리 없어”
구룡마을 무허가 판잣집에 살아 온 주민들이 이곳의 토지를 저렴하게 사게 해달라는 요구에 대해 SH는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했다. “도시개발업무지침에 따라 이주자 택지를 분양할 때 원가로 분양하지만, 토지 소유나 적법한 건축물 거주 등 자격 조건이 해당하지 않아 원가 분양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강남구도 구룡마을 거주민들의 요구는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구청 관계자는 “주거용 건축물 거주 사실 확인서 발급 요구는 이미 작년 3차례 보상협의회에서 논의됐지만 발급이 불가하다고 안내했다”며 “구룡마을에는 (기준이 되는) 1989년 1월 24일 이전에 만들어진 주거용 무허가 건축물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