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국무총리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한국사회학회가 ‘청년층 조기 사회진출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하는 포럼을 지난 21일 공동 개최했다.
포럼에서 이상준 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대기업) 공개 채용(공채)이 (지금보다) 더 없어지면 한국에서도 비명문대, 지방대 출신이 얼마나 양질의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도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한 친구들이 ‘이 동네에서 스탠포드나 UC 버클리 출신이 아니면 과연 취업을 할 수 있나’라는 농담을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청년층이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를 갖지 못하면 결혼과 출산이 잇따라 늦어지면서 각종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나오고 있다. 그러나 마땅한 방안이 없는 게 현실이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대기업 공채, 2019년부터 사라지고 있어
대기업이 대졸 사원을 뽑는 일반적인 경로였던 공채 제도는 2019년 변화를 맞았다. 그해 현대차그룹은 정기 공채를 폐지하고 수시 채용으로 전환했다. 이후 SK·LG·롯데도 공채를 폐지했고, 삼성만 60여년 역사의 공채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공채 폐지는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인쿠르트가 올해 하반기 대기업 103곳, 중견기업 117곳, 중소기업 588곳 등 국내 기업 808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채용 계획을 확정한 기업은 정기 공채로 필요한 인원의 22.6%를 뽑겠다고 했다. 수시 채용은 61.9%, 인턴십은 15.5%다. 정기 공채 비율은 작년보다 1.4%포인트 줄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수시 채용은 정기 공채와 비교하면 범용 인재를 뽑아서 ‘쓸 만한 수준으로’ 키워내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기업 입장에서는 유리하다. 한국 기업의 채용 방식도 글로벌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공채보다 수시 채용이 ‘대세’로 자리잡고 있는 이유다.
◇수시 채용, 공채보다 지역·학교·성별 다양성 낮아
공채 폐지는 국가 전체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취업 준비생들은 특정 기업과 직무에 적합한 역량을 갖췄다고 각자 증명해야 한다. 그 증명은 보통 경력으로 한다. ‘경력 있는 신입’만 신입사원이 될 수 있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취업을 못해서 경력을 쌓을 수 없다”와 “경력이 없어서 취업을 할 수 없다”가 반복되는 셈이다.
이상준 전 연구위원은 지난 21일 포럼에서 “경력이 없는 대졸 신입 비중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노동연구원은 지난해 근로자 500인 이상, 매출액 1조원 이상 100개 대기업 인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채용한 인원 중 ‘경력 없는 신입’ 비중은 2019년 47%에서 작년 40.3%로 떨어졌다. 신입 사원 10명 중 6명은 앞서 다른 곳에서 인턴 등 경력을 쌓은 뒤에야 취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조사 결과 공채보다 수시 채용으로 선발된 신입 사원의 지역, 학교, 성별에서 다양성이 낮게 나타났다. 이 전 연구위원은 “(정기 공채가 아닌) 수시·상시 채용에서는 학력이나 경력도 중요하지만, 누구의 추천을 받아서 (역량을) 입증하느냐가 핵심”이라고 했다. 본인 역량 이외의 요소가 취업에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신입사원 평균 연령 31세… 출산 평균 연령 33세는 ‘필연’
공채가 폐지되고 수시 채용이 확대되면서 청년들은 취직하기가 어려워졌다고 느끼고 있다. 노동연구원이 지난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18~39세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경력이 없는 신입 지원자가 일자리를 얻기 어렵다’는 데 77.3%가 동의했다. ‘내가 지원할 수 있는 기업의 숫자가 적어지고 있다’는 데에는 69.2%가 “그렇다”고 답했다.
아울러 첫 직장을 갖게 되는 청년층 나이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인크루트가 집계한 대졸 신입사원 평균 연령은 1998년에는 25.1세였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8년에도 27.3세였다. 2020년에는 31세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은 늦은 결혼·출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해 평균 초혼 연령은 남성 34.0세, 여성 31.5세로 10년 전보다 각각 1.8세, 1.9세 상승했다. 지난 해 첫째 아이 출산 연령은 33.0세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국 중 가장 높았다. 이는 둘째 아이를 낳기 어렵게 하고, 자연스럽게 저출생 원인이 된다.
정부는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경력 있는 신입’을 만드는 데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내년 예산에 청년 고용 지원 인프라 예산은 올해보다 291억원 늘어난 1122억원 반영됐다. 이 예산을 대학일자리플러스센터에 미취업 졸업생 특화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재학생 맞춤형 고용 서비스도 확대한다. 올해보다 1만명 늘어난 5만8000명의 청년이 정부 지원을 받아 취업 전 직무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