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일제 근무가 20년 만에 격변을 맞고 있다. 감염병 확산으로 시행됐던 재택근무와 화상회의와 같은 새로운 근무 형태가 시발점이었다. 정보기술(IT)과 같은 한정적 분야에서 가능할 것만 같았던 주 4일제는 제조업, 서비스업으로도 확산할 조짐이다. 조선비즈는 주 4일제를 경험한 근로자, 기업과 전문가를 통해 한국의 주 4일제 적용 현황과 전망을 3편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주]

서울 한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는 모습. /뉴스1

전문가들은 국내 주 4일제 도입이 일부 업종에서만 한정적으로 도입될 것이라는 공통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근로 시간 감축을 위한 근로 일수 축소도 세계적인 추세로 한국 역시 장기적으로 가야 할 방향이라는 데도 대부분 공감했다.

주 4일제 추진 주체에 대한 의견은 엇갈렸다. 앞서 주 5일제 도입처럼 정부나 정치권을 통한 법제화를 통해야 한다는 주장과 노사 합의를 거쳐 민간 주도로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섰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는 등 실효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주 4일제를 시행하는 기업으로 구직자들이 쏠리는 직업 양극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공공기관과 금융, 병원 근로자 업무 부담이 추가로 가중되고, 이용자와 갈등이 심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주 4일제, 세계적 추세…제조업 위주 韓, 전 산업 확산 어려워”

박상인 서울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내서)주 4일제가 전반적으로 확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정보기술(IT), 바이오, 소프트웨어, 빅테크와 같은 일부 고부가가치 업종에서만 한정적으로 (도입이)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예컨대 IT 기업이 일주일이라는 기한을 설정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경우, 일을 몰아서 진행하고 남은 기간은 휴식으로 대체하며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반면 야간근로 수당을 월급에 포함한 포괄임금제 기업 근로자는 몇 시간을 일해도 고정된 급여를 받는다. 현재도 일한 만큼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근로자가 대다수인 상황에서 주 4일제를 도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국내 대기업 대다수가 포괄임금제를 적용하고 있다.

조선DB

한국 산업계는 제조업에 절대적으로 기대는 구조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7.8%다. 이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이다. 독일(21.6%)과 일본(20.8%)을 제외하면 미국(11.6%), 영국(9.6%) 등과 비교해 3배 가까운 격차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도 “주 4일제가 실현할 수 있는 곳이 있고, 불가능한 곳이 있을 것”이라며 “생산직처럼 현장 노동 집약적 산업은 어려워 보인다”고 진단했다. 다만 그는 “코로나19를 거치며 재택근무 타당성이 입증된 분야의 경우 주 4일제를 충분히 실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주 4일제를 실시하는 곳은 IT 대기업으로 업계 특성상 노동 유연성이 있지만, 나머지 사업장은 제조업이라 당장은 어려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일각에서는 주 4일제가 정치권의 포퓰리즘 공약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수도권 대학 행정학과 교수는 “근로자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뿐 아니라, 또 다른 이면도 생각해야 한다”며 “은행이 주 5일 동안 오후 4시에 문을 닫는데 그것조차 일반 시민들이 불편함을 많이 느낀다. 공공서비스도 쉰다고 생각하면 시민들이 불편해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 주도 vs 노사 합의’ 도입 주체 두고 의견 분분…실효성 우려도 제기

주 4일제를 도입하는 주체를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과거 주 5일제와 같은 정부와 정치권을 통한 법제화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민간 주도로 자율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남승하 숙명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주 4일제를 시행하려면 주 5일제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의지가 필요하다”면서도 “한국 사회는 경영산업계와 노동계가 서로 신뢰하지 않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변화를 논의할 만큼 성숙하지 못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종수 교수는 “정부가 획일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면 이해 당사자 간 갈등은 불 보듯 뻔하다”면서도 “주4일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법적 개념에 대한 합의와 보장이 우선 뒷받침돼야 하고, 현장 차이에 따른 유연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쪽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한 구직자가 일자리정보 게시판에서 구직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업 대부분이 반대할 것이고, 근로자 중에서도 일을 더 하고 돈을 더 받겠다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기업, 노동자, 정부까지 여러 걸림돌에 부닥칠 수 있다”고 말했다.

주 4일제로 새로운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박상인 교수는 “젊은 사람들이 주 4일만 근무할 수 있는 직장만 찾게 되는 직업 양극화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남승하 교수도 “단순 일하는 날을 하루 빼는 게 아니라, 사회 전반을 바꾸겠다는 의미”라며 “산업계 생산성 문제와 학생들 수업 일수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산적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