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출생아 수가 같은 달 대비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하면서 올해 합계 출산율이 0.6명대로 떨어질 수 있으리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인구 감소로 직격탄을 맞게 된 것은 수도권이 아닌 지방이다. 진학과 취업 등으로 꾸준히 인구 유입이 이뤄지는 수도권과 달리 지방은 지속적으로 인구가 줄어드는 추세다. 2021년 감사원 보고서는 2067년 무렵엔 전국 243개 지자체 중 229개 지역이 소멸 고위험 지역이 될 거라고 예상했다. 조선비즈는 인구가 줄고 있는 지자체가 어떤 노력으로 소멸 위기에 대응하고 있는지 짚어본다. [편집자 주]
“이게 뭔 일이래유? 사과 약과(藥果) 사려고 이렇게 기다리나벼? 숱하게 오네~”
지난달 25일 오후 1시쯤, 충남 예산시장 골목을 지나던 한 시민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님 100여 명이 약과를 구매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는 광경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낙원약과는 예산 사과로 만든 사과잼, 밀가루, 조청 등을 넣은 약과를 판매한다. 약과는 ‘제사상 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 캐러멜 같은 단맛과 쫀득한 식감이 주목받으면서 이른바 ‘할매니얼(할머니가 좋아할 듯한 디저트)’로 불리며 20~30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약과는 5개 한 세트 만원, 낱개 2000원에 판매한다. 여러 사람이 맛보도록 1인당 두 세트로 구매 수량을 제한한다. 한 중년 남성은 지인과 통화하며 “여기 사람들이 엄청나, 세트 몇 개 사? 어어 두 세트밖에 못 산다고? 그럼 두 세트 살게”라고 했다. 낙원약과 직원은 계산하며 “오후 1시쯤 문을 여는데 오픈 1시간 만에 판매를 마감할 때도 있다”고 했다.
◇'힙당동’ 서울중앙시장 방문자 117% 증가할 때 예산시장 934% 늘어
인구가 7만명대인 지방의 전통시장에서 약과를 사려 100여 명이나 줄을 서는 것은 웬만해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 예산 출신인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난 1월부터 나타난 변화다. 예산 주민 최모(28)씨는 “백 대표가 예산 사과로 만드는 약과 레시피(조리법)를 알려줬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낙원약과가 시장 명물로 떠올랐다”며 “냉장고에 넣었다가 살짝 차갑게 먹는 게 가장 맛있다”고 했다.
예산시장은 2000년대 초반까지는 장을 보러 온 주민들로 북적였으나, 인구가 도시로 빠져나가면서 침체됐다. 백 대표는 고향 예산에 30억원을 들여 전통시장 살리기에 나섰다. 시장 내부를 리모델링하고, 조명과 함석 지붕을 설치해 예스러운 분위기를 내면서도 깨끗한 신식 시설을 갖췄다.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메뉴를 개발해 상인들과 힘을 합쳐 새롭게 문을 열었다.
예산군에 따르면 백 대표가 올해 1월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뒤 지난달 중순까지 180만여 명이 예산시장을 방문했다. 누적 매출은 200억여 원으로 추산된다.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 전 하루 방문객은 보통 20~30명, 많아야 300명이었는데 지금은 주말 기준 1만~1만5000명이 방문한다.
‘레트로 감성’을 좋아하는 20~30대에게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가 통한 덕분이기도 하다. BC카드 신금융연구소가 2019년부터 올해까지 1~4월 전국 주요 전통시장 15곳의 매출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서울 망원시장을 올해 1~4월 방문한 고객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 늘었다. 같은 기간 제주 동문시장은 25%, 강원 강릉중앙시장은 70% 늘었다.
이른바 ‘힙당동’이라고 불리며 청년들이 몰리는 서울 중구 신당동 서울중앙시장은 117% 증가했다. 충남 예산시장은 934% 증가했다. BC카드 관계자는 “매출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꾸준히 증가하는 전통시장 매출 상승의 주요 요인은 MZ 고객의 유입이었다”고 말했다.
◇’닭을 튀겼는디, 맛이 없겄슈?’ 예산 사과로 만든 파이도 품절
예산 사과로 만든 애플파이를 판매하는 ‘애플양과점’은 이날 오후 1시 30분쯤 준비한 파이가 매진됐다. 가게 앞에는 ‘재료 소진 죄송합니다’ ‘주말과 공휴일은 팀당 두 박스로 판매를 제한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안내판이 놓여 있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전부 팔렸슈, 죄송해유”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가려던 찰나 앞치마를 한 중년 여성이 들어왔다. “우리 국숫집에서 왔는데 다 끝났슈?” “끝났슈” “아이고 우리도 바빠서 이제 왔는데 일찍 올걸.” 뒤이어 안경 쓴 중년 남성도 커피를 손에 들고 오며 물었다. “지금 팔아유?”
애플양과점 주인 송모(50)씨의 모친은 예산시장에서 이불·한복 장사를 하고 있었다. 백 대표의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가 시작되며 모친이 가게를 접었고, 아들 송씨가 애플파이 조리법을 배워 올해 7월 초 가게 문을 열었다. 평일에는 700~800개, 주말에는 1000개씩 애플파이를 판매한다고 한다.
송씨는 설명을 하며 연신 싱글벙글 웃었다. “정성스럽게 수제로 만들고 버터도 한 팩에 2만원 넘는 좋은 재료를 쓰고, 계란도 신선한 것만 써유. 페스츄리 결이 살아 있쥬? 많이들 찾아주시는데 바빠서 (행복해) 죽겠어유. 주말에 손님이 많을 때는 가게 앞 골목이 북적여서 걸어 다니지도 못 해유. 최근 신메뉴 조리법도 배웠는데 (장사가 잘 돼서) 일할 직원도 부족하고 새로 만들 시간도 없어서 지금 판매를 못할 정도라니까유.”
‘선봉국수’ 앞에도 이날 점심 20여 명의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 멸치 육수로 깊은 맛을 낸 멸치 국수와 파기름 양념장에 비벼 먹는 비빔 국수를 판매한다. 경북 문경시에서 방문한 한 중년 여성은 “예산은 국수가 유명하다고 들어서 기다리고 있다”며 “국수는 사람들이 금방 먹고 나가니까 자리 회전율이 높다. 다른 곳에서 어정쩡하게 먹느니 차라리 여기서 기다렸다가 맛있게 한 그릇 먹는 게 낫다”고 했다.
예산시장 장터 광장에는 이날 점심부터 200여 명의 사람들이 앉아서 식사하고 있었다. ‘신광정육점’에서 삼겹살 등을 구매한 뒤 ‘불판 빌려주는 집’에서 불판을 빌린 몇몇 사람들이 집게로 고기를 빠르게 뒤집고 있었다. ‘대흥상회’ 주인은 오징어를 굽고 건어물을 팔며 고소한 냄새로 사람들의 발길을 멈춰 세웠다. 예산 사과로 만든 증류주 추사와 경기도 문배술 등 지역 전통주를 판매하는 ‘백술상회’와 닭 바비큐를 파는 ‘금오바베큐’ 등도 사람들이 북적였다. 장터 광장 골목에는 ‘닭을 튀겼는디 맛이 없겄슈?’라는 가게 홍보 문구가 붙어 있었다. 예산시장에는 음식점과 카페만 30여 개다.
대전에 거주하는 이모(31)씨는 모친, 동생과 이날 처음으로 예산시장을 방문했다. 이씨는 “음식 값이 저렴하고 이것저것 종류별로 구매해서 장터 광장에서 한꺼번에 먹을 수 있어 좋다”며 “불판 고기, 연돈 볼카츠, 비빔 국수, 멸치 국수, 닭꼬치, 사과 라떼 등을 먹었다”고 했다. 이씨는 “시장 규모가 생각보다 크고 시설도 신식으로 깨끗하다”며 “(모친은) 예산시장 주차장에 들어선 오일장을 구경하셨는데 야채가 싱싱하고 눈요깃거리가 많다고 하셨다”고 했다.
장터 광장 스태프는 “주말이나 바쁠 때는 대기가 1700번대까지 갔는데 오늘은 그나마 한가한 편이라 빈자리가 나면 앉으면 된다”고 했다. 사람들이 식사를 마치자 몇몇 스태프는 테이블 사이를 요리조리 돌아다니며 자리를 정리했다.
◇예산시장 맥주축제에 24만명 찾아 ‘빈 방 제로’…줄어만 가던 인구도 반등
전국에서 예산시장을 찾아오자 ‘낙수효과’가 나오며 지역 경제가 들썩이고 있다. 한 택시기사는 “최근 맥주 축제 때 관광객이 엄청나게 와서 숙박 업소에 방이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며 “택시 손님도 많아지고 돌아다니면서 근처 편의점에서 생수 한 병이라도 사고,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예산에서 지난달 1~3일 열린 맥주 축제에는 24만6000여 명이 방문했다. 지역 맥주와 통돼지 바비큐 등이 인기였다.
예산시장 상인회 관계자는 “현재 500여 면 규모의 주차장이 있는데 축제와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주차 공간이 더 필요하다”며 “(지자체에서) 예산을 지원받아 250여 면을 추가할 계획으로 부지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줄어만 가던 인구도 경제가 살아나자 회복할 기미가 보인다. 2021년 말 예산 인구는 7만6801명까지 줄었지만, 올해 8월 말 인구는 7만8744명으로 늘었다.
백 대표의 손길은 예산에만 그치지 않는다. 충남 금산군은 이달 6~15일 금산 세계 인삼 축제를 개최한다. 백 대표가 인삼으로 만든 음식을 ‘백종원의 금산 인삼 푸드 코너’에서 판매한다. 충남 홍성군은 오는 11월 3~5일 ‘글로벌 바비큐 페스티벌 in 홍성’ 축제를 연다. 더본코리아가 한우, 한돈, 양계 등 홍성 특산물로 바비큐를 개발할 계획이다.
백 대표는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와 손 잡고 지역 축제 활성화와 바가지 요금 근절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에도 나섰다. 더본코리아와 한국관광공사가 이달 11일 지역 축제 할성화 업무 협약을 맺어 내년 계획을 본격 논의한다. ‘통돼지 바비큐 한 접시 4만원’ ‘옛날 과자 한 봉지 7만원’ 등 논란이 됐던 지역 축제 바가지 요금이 없어지고,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특색 있는 메뉴를 합리적인 가격에 즐길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