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출생아 수가 같은 달 대비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하면서 올해 합계 출산율이 0.6명대로 떨어질 수 있으리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인구 감소로 직격탄을 맞게 된 것은 수도권이 아닌 지방이다. 진학과 취업 등으로 꾸준히 인구 유입이 이뤄지는 수도권과 달리 지방은 지속적으로 인구가 줄어드는 추세다. 2021년 감사원 보고서는 2067년 무렵엔 전국 243개 지자체 중 229개 지역이 소멸 고위험 지역이 될 거라고 예상했다. 조선비즈는 인구가 줄고 있는 지자체가 어떤 노력으로 소멸 위기에 대응하고 있는지 짚어본다. [편집자 주]

“도심 빌딩숲에서 갑갑하게 있다가 부산 바다를 보며 워케이션을 하니까 마음이 편하네요. 경치 좋은 카페에서 놀면서 일하는 기분이라 업무 능률도 올라갑니다. 서울에서 누리지 못하는 것을 누리고 있어요.”

부산 동구 아스티호텔 24층 워케이션 거점센터에서 지난달 20일 오전 10시쯤 만난 최모(27)씨가 한 말이다. 최씨는 서울 중구 을지로에 사무실이 있는 정보기술(IT) 업종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다가 6박7일 일정으로 부산을 찾았다. 최씨는 “다른 팀원도 조만간 내려온다. 퇴근 후 함께 요트를 타러 가기로 약속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화상 회의로 원격 근무가 가능하기 때문에 충분히 업무적인 소통을 할 수 있다”며 “사무실 칸막이에 빽빽하게 앉아 있는 것보다 일할 맛이 난다”고 했다.

부산시가 워케이션을 하는 직장인을 유치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워케이션은 일(Work)과 휴가(Vacation)를 합친 말로, 휴양지에서 일과 휴식을 병행하는 업무 방식이다. 코로나19를 거치며 국내에서 자리 잡았다. 기업들도 직원 복지를 위해 허용하는 추세다. 부산은 원격 근무하는 직장인을 끌어와 생활 인구를 늘리고 소비를 유도하며 지역 경제 부흥을 꾀하고 있다.

부산 동구에 위치한 워케이션 거점센터에서 지난달 20일 오전 직장인들이 일과 휴식을 병행하고 있다. 통유리 너머로 부산 바다 전경이 보인다. /홍다영 기자

◇”휴식이 필요할 땐? 노트북 덮고 바다 보며 벌러덩”

이날 오전 방문한 708㎡(214평) 규모의 부산 워케이션 거점센터에는 20여 명의 직장인이 일하고 있었다. 통유리 너머로 바다를 보며 일할 수 있는 1인 좌석 6개는 만석이었다. 몇몇은 아이스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꼽고 화상 회의를 하는 직장인도 있었다. 1인 좌석 옆에는 온몸을 감싸는 푹신한 빈백이 있었다. 한 남성은 노트북을 두드리다가 한숨을 크게 쉬더니 빈백에 벌러덩 누워 바다를 보며 머리를 식혔다.

라운지에 있는 공용 책상에선 여러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교류하고 있었다. 정보와 경험을 나누며 인적 네트워크를 쌓는 모습이었다. 대여섯 명의 직장인은 화이트보드로 이뤄진 회의실 벽에 글씨를 쓰며 회의를 했다. 방음 시설이 갖춰진 통화 부스도 있다. 업무에 필요한 노트북, 마우스, 키보드, 휴대전화 충전기, 선풍기, 담요, 스탠드, 귀마개 등을 빌릴 수 있다. 개인 짐은 사물함에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

서울 마포구에 사무실이 있는 소셜플랫폼 기업에서 근무하는 최모(28)씨는 벌써 두 번째 워케이션을 즐기고 있었다. 회사에서 원격 근무를 허용해줘 작년에는 제주도를, 올해는 부산을 찾았다. 최씨는 “일하다가 머리가 안 돌아가면 나만의 쉴 공간이 필요하지 않느냐”며 “회사 사무실에서는 (눈치가 보여 휴식하기) 어려운데 여기서는 노트북을 덮으면 바로 쉴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그는 “조만간 광안리에서 서핑을 즐길 계획”이라고 했다.

부산 동구에 위치한 워케이션 거점센터에서 지난달 20일 오전 직장인들이 대화하고 있다. /홍다영 기자

경기 수원시에 있는 한 마케팅 회사에서 근무하는 박모(25)씨는 3일째 부산에 머무르고 있었다. 박씨는 “회색 도시에서 일할 때는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여기 오니까 힐링된다”며 “유명 피자 가게, 국밥집 등을 방문했는데 만족스럽다. 퇴근 후 스파를 체험할 예정”이라고 했다. 서울에서 이커머스(전자상거래) 관련 1인 사업을 하는 정모(43)씨는 “최근 영도에 다녀왔다”며 “근무 환경이 바뀌니까 확실히 좋다”고 했다.

점심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중년 남성은 입구에 적힌 ‘워케이션 추천 맛집’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직장인들이 맛집을 공유하려 만든 목록이다. ‘국밥+보쌈 정식 1만2000원’, ‘감자면 넣어주는 감자탕집’, ‘OO된장 X맛탱입니다 꼭 가세요’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몇몇은 샌드위치 등 미리 챙겨온 도시락을 들고 팀원들과 미니바로 향했다. 미니바에서도 통유리 너머로 부산 전경을 한눈에 바라보며 식사할 수 있었다.

지난달 20일 오전 부산 동구에 위치한 워케이션 거점센터 미니바. /홍다영 기자

◇직장인 5명 2주 워케이션하면서 쓰는 돈, 부산시민 1년 쓰는 돈보다 많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이 워케이션에 뛰어든 것은 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부산 인구는 지난 2018년 344만1453명에서 올해 8월 330만2470명으로 줄었다. 구도심인 동구, 서구, 영도구는 정부가 지정한 인구감소지역에 포함됐다. 인구가 감소하면 소비가 줄고 그만큼 지역 경제도 어려워진다.

위기감을 느낀 부산시는 원격 근무하는 직장인에 주목했다. 일반 관광객은 주말이나 휴가철에 잠깐 머무르지만 직장인은 평일이나 비수기에도 꾸준히 머무르며 돈을 쓴다.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에 따르면 지난 2021년 부산 시민의 1인당 연간 기초 소비액은 619만원이다. 이는 부산에서 1박2일 숙박하는 관광객(1인당 기초 소비액 21만5000원) 13명과 당일치기 관광객(1인당 기초 소비액 7만6000원) 45명을 합친 수준이다. 그런데 2주간 부산에서 워케이션하는 직장인(1인당 기초 소비액 140만원) 5명은 이보다 많은 돈을 쓴다.

부산시는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와 ‘비즈니스는 부산에서’를 주제로 올해 2월 워케이션 거점센터 문을 열었다. 지금까지 참여 기업은 구글코리아, 슬랙 등 700곳이 넘고, 참여 인원은 1200여 명이다. 곽규열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매니저는 “IT 기업 종사자가 60%쯤이고, 그밖에 서비스와 제조업 등 다양한 기업에서 참여하고 있다”며 “참여 인원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추세”라고 했다. 그러면서 “역외 기업이 부산을 경험하고 이를 토대로 부산으로 이전하거나 투자하도록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게 최종 목표”라며 “수도권에 위치한 한 회사가 워케이션 후 부산에 지사 설립을 추진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지난달 20일 오전 부산 동구에 위치한 워케이션 거점센터 1인 좌석. 부산 바다를 바라보며 노트북을 할 수 있다. /홍다영 기자

참여 방법은 간단하다. 기업과 개인 모두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한 뒤 워케이션 거점센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영도구에 위치한 워케이션 위성센터도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다. 숙박의 경우 부산 호텔 30여 곳과 제휴했다. 5박6일 이상 머무르면 1인당 하루 5만원, 최대 50만원까지 할인받을 수 있는 숙박 바우처를 제공한다. 스파, 놀이공원, 서핑 등 30개가 넘는 휴양 시설과 연계한 관광 바우처도 준다.

곽 매니저는 “보통 스파를 즐기려면 2만5000원~3만원쯤 드는데 부산 워케이션 프로그램과 연계하면 무료”라며 “예산 퍼주기라는 의견이 나올 수 있지만 방문하는 분들의 1인당 소비액을 추산했을 때 지원금의 2배 이상을 쓰기 때문에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부산시는 행정안전부 지방소멸대응기금으로 워케이션 관련 예산을 마련했다. 최근에는 일본 와카야마현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해외 직장인 수요도 발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