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9일 친구 3명과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에 놀러 간 20대 남성 A씨의 여행은 기대와 달리 엉망이 됐다. 여행 당일 입실 시간인 오후 5시에 맞춰 해수욕장 인근 숙소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돼 같은 숙소를 예약했다는 이들이 찾아온 것이다. A씨는 숙박시설 업주로부터 예약이 겹쳤다는 사실과 함께 ‘취소 수수료’를 제외한 금액을 환불해 주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갑자기 숙소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그는 해수욕장에서 8㎞ 떨어진 곳에 간신히 새로운 숙소를 구했다. A씨는 “금전적인 부분보다 휴가 일정이 꼬인 것 때문에 더욱 화가 난다”고 했다.
숙박시설이 공석·공실, 예약 취소에 따른 손실 최소화를 위해 수용 인원보다 더 많은 인원 예약을 받는 이른바 ‘오버부킹(중복예약)’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소비자들이 잇따르고 있다. 12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 호텔이나 모텔, 콘도, 팬션, 민박 등을 포함한 숙박시설에서 중복예약 등으로 피해를 봤다는 신고는 총 1152건으로 집계됐다. 월평균 144건으로, 현 추세라면 올해 남은 4개월까지 포함할 경우 지난해 연간 기준 신고 건수(1428건)를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021년(1047건) 신고 건수는 현 시점에서도 이미 넘어섰다.
숙박시설 중복예약 사례가 증가하는 이유로는 숙박업체 예약 플랫폼이 증가한 점을 꼽을 수 있다. 숙박업 사업자는 여러 플랫폼에 객실을 등록해 두는 게 유리하다. 하나의 객실을 A, B, C와 같은 여러 플랫폼에 올려두는 식이다. 사업자가 A 플랫폼에서 숙박 예약을 받은 경우 B와 C 플랫폼에서 직접 예약 마감을 해야 한다. 그런데 예약 마감을 수동으로 하기 때문에 숙박업자가 이를 깜빡 잊어버릴 경우 중복 예약이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피해에도 불구하고 중복예약 피해자들이 보상받을 방안은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한국소비자원 피해 구제 제도에 따르면 숙박 서비스는 사업자 귀책 사유로 계약을 해지할 때 ▲사용 예정일 10일 이전 취소 시 계약금 환급 ▲사용 예정일 5일 전 취소 시 계약금 및 총 요금의 30% ▲1일 전 또는 사용예정일 당일 취소 시 손해를 배상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는 모두 권고 사항이라, 법적 효력이나 강제성도 없다.
때문에 숙박시설 중복예약 피해자는 예약한 방과 다른 방에 머무르거나, 자신이 웃돈을 주고 다른 숙소를 예약해야 했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선 숙박업체가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허점을 노리고 고의로 중복예약을 받고 있다는 의심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6월 김모(34)씨는 공유숙박업체 앱으로 강원도 양양에 있는 5인용 펜션을 잡았지만, 중복예약으로 다른 방에서 1박 2일간 묵어야 했다. 그는 “휴가 성수기에 별다른 대안이 없어 예약한 것과 다른 허름한 공간에 머물러야 했다”면서 “성수기엔 당일 숙박 예약이 어려운 점을 노리고 숙박업체가 고의로 중복예약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항공편 중복예약 폐해도 여전한 상황이다. 중복예약은 원래 항공사가 자주 하던 관행이다. 승객의 예약 취소로 공석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좌석 수보다 더 많은 표를 판매하기 때문이다. 항공편이 중복예약될 경우, 외지에서 발이 묶이게 된 승객들은 항공사의 일방적인 ‘통보’를 따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불편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지난 8월 31일 가수 겸 배우 혜리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한 달 반 전에 예약하고 좌석까지 지정했는데 퍼스트 클래스 좌석이 없다고 해서 이코노미로 다운그레이드됐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또 “(항공사가)환불도 못 해주고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 비행기를 타고 가라고 했다”고 폭로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고시한 소비자 분쟁 해결 기준은 중복예약으로 계약을 해지할 경우 업주가 위약금을 물거나 손해를 배상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강제성은 없다”며 “민사 소송 절차에 따라서 분쟁을 해결할 순 있지만, 현실적으로 시간이나 비용이 많이 들어서 단순히 합의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들이 예약하기 전 환급 정책이나 규정을 꼼꼼히 확인하고 계약조건을 검토하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