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도서관의 무료 도서 대출·열람 서비스가 저작권자와 출판업계에 손해를 끼치고 있다면서 이를 보상해야 한다는 내용의 저작권법 개정안이 발의돼 논란이 일고 있다. 관련 업계는 ‘마땅한 권리’라며 환영하지만, 도서관 측과 도서관 이용자들은 “도서관이 저작권료를 내게 되면 도서 구입비 등 기존 예산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낸다.
지난 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공대출보상제를 담은 저작권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로 발의했다. 공공대출보상제는 공공도서관이 소장 도서의 대출횟수 등에 따라 작가, 출판사 등 저작권자에 저작권료를 지급하는 제도다.
개정안은 공공도서관의 무료 도서 대출·열람 서비스로 인해 ‘저작자와 출판계가 도서 판매의 기회를 잃어 불가피하게 재산적 손실을 보고 있다’며 도서관이 공공대출보상금을 해당 저작권자에게 지급하도록 하고, 지급에 필요한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중앙정부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약 300억원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구체적인 이행방식과 보상금 규모, 재원 출처 등에는 차이가 있지만 프랑스, 덴마크 등 전 세계 34개 국가에서 해당 제도를 시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창작자와 출판업계 등 제도 도입을 찬성하는 측에서는 공공대출보상제가 “보상금의 액수 문제가 아니라 권리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정우영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은 “도서관에서 더 많이 읽히는 책을 쓴 작가일수록 도서 판매의 기회가 줄어들어 더 큰 재산권의 피해가 발생한다”면서 “공공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작가 개인의 권리가 침해되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정 부이사장은 “앞으로 협의를 통해 세부적인 이행 방식과 내용을 정해야겠지만, 보상금을 작가 개인에 직접 지급하지 않고 도서발전기금 등으로 모아 양질의 공공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창작·출판산업 전반의 발전을 모색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도서관들은 제도가 시행되면 도서관의 공공 서비스 품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도서관협회는 지난 14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도서관이 보상금을 부담하게 되면, 도서관의 도서 구매 축소로 이어진다”면서 “도서관 서비스 품질 저하로 귀결돼 시민들의 문화생활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제도 도입의 전제가 되는) 도서관의 대출이 도서 판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 실증적으로 입증된 바 없다”면서 “대출이 오히려 홍보 효과를 발생시켜 도서 판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반박했다.
한편 법안의 내용이 알려지자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SNS) 등에서는 ‘도서관 이용자들이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냐’하는 우려가 나왔다. 한 트위터 사용자는 “도서정가제 때문에 책값이 올라 중고 서점에서 사거나 도서관에서 빌려서 책을 읽고 있다”면서 “(제도가 도입된다면) 도서관 운영비용이 급격히 증가할 것이고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면 도서관이 문을 닫아야 한다”고 했다.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공공대출보상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와 있다.
김 의원실 측은 과도한 우려라는 입장이다. 김 의원실 측은 “도서구입비 등 도서관의 기존 예산에선 단 10원도 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스타 작가·출판사가 보상금을 독식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지난 2020년 한 해 동안의 국립중앙도서관 대출 통계를 확인한 결과 대출 상위 50권의 작가 수를 20~30명 정도로 보고 있다”며 “이들에게는 보상금 상한선을 정할 것”이라고 했다. 보상금의 하한선도 정해 대출이 적은 비인기 도서를 쓰는 작가들도 최소한의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