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계속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원유 및 원자재 가격 상승, 불확실한 경제 상황 등 대내외 악재가 쏟아지면서 ‘경제 모세혈관’으로 불리는 중소기업이 무너지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원자재 가격 급등이다.
알루미늄은 작년 3월에 t당 2212달러에서 올해 3월에는 3053달러로 뛰었고, 나프타 가격도 같은 기간 577달러에서 966달러로 올랐다. 고철, 선철, 니켈 등 중소기업이 주로 쓰는 원자재 가격도 두 배 가까이 올랐다. 미리 원자재 물량을 대량으로 확보해놓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그때 그때 필요한 원자재를 사서 쓰다보니 더 타격이 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소기업의 가동률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지난 1일 중소기업중앙회는 2022년 2월 기준 제조업 중소기업의 평균 가동률이 71.3%에 그친다고 발표했다. 2017년 5월보다 1.2%p 하락한 수치다. 가동률은 기업이 주어진 설비, 노동 등 조건 하에서 정상적으로 가동했을 때 생산할 수 있는 최대 생산능력에 대한 실제 생산량의 비율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은 중소기업이 모여 있는 국내 최대 산업단지인 반월·시화 국가산업단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12일 오전 기자가 방문한 반월·시화 국가산업단지(안산 스마트허브)는 적막하기만 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대형 트레일러나 트럭은 가끔 보이는 수준이었고, 작업이 한창인 공장에서 으레 들려왔을 기계 소음도 거의 없었다. 곳곳에는 ‘현위치 공장임대’ ‘공장 부지 평수 다양’ 같은 문구가 쓰인 현수막만 나부꼈다. 한창 일할 시간이지만 한데 모여 담배를 피우는 작업복 차림의 사람들도 종종 보였다.
불황은 산업단지 안에 자리한 상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반월·시화 산업단지 내 중소기업이 각종 부품을 구입하는 유통상가에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하루 일과가 시작되는 오전 9시에도 유통상가의 상인들은 하릴없이 텔레비전을 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이곳 유통상가에서 23년째 기계제작, 프레스 금형 작업을 하고 있다는 송모(65)씨는 “최근 2~3년 사이에 거래처가 60% 가량 줄었다”며 “일이 많을 땐 아침 7시에 출근해 정신없이 일했는데, 이젠 아침 10시에 나와도 한가롭다”고 말했다. 그는 “거리가 사람들로 꽉 찰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면서 “이제 일을 그만둘 때가 된 것 같다”고 넋두리했다.
공구 도소매점을 운영하는 강모(62)씨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송씨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상가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면서 “예전엔 이 거리에 100명이 있었다면, 지금은 70~80명이 될까말까하다”고 했다.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보고 있던 다른 용접업체 직원도 “5년 전엔 직원이 4명이었는데 지금은 나만 남았다”고 전했다.
식당, 편의점 등 산단 내 자영업자들도 “상황이 좋지 않다”며 입을 모았다. 길거리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박모(50)씨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손님이 점차 줄기 시작해 5년 전 여기서 처음 매점을 열었을 때보다 손님이 반은 줄었다”고 했다. 편의점 점주 이모(41)씨도 “코로나 19가 막 시작됐을 땐 하루 초기 매출이 20~30만원에 불과했다”며 “지금은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기에는 부담스러워 아침 6시부터 자정까지 혼자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점심시간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장과 상가에서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공장 근로자들이 주로 찾는 한 함바식당은 80명 정도는 수용 가능할 법한 큰 식당이었지만, 식사 중인 손님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식당 텔레비전에서 틀어놓은 뉴스를 제대로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식당은 조용했다. 식기 소리와 작은 대화 소리만 간간히 날 뿐이었다. 식당을 운영하는 정승호(50)씨는 “항상 손님은 이 정도 온다”며 “3년 전 식당을 인수할 때는 점심 손님이 150명 정도였는데, 이제는 100명 안팎”이라고 했다. 그는 “저녁장사도 하긴 하는데, 요즘은 잔업하는 사람이 없어 10인분 정도만 해 놔도 충분하다”고 전했다.
산단 내 공장부지나 상가의 공실률도 높아지고 있다. 이 근방에서 10년째 부동산을 하고 있다는 공인중개사 조모(52)씨는 “여기가 임대료가 많이 올라 대형공장이 화성 등 외곽 지역으로 많이 빠졌다”면서 “상가들도 예전엔 빈 곳이 없었는데 지금은 공실률이 10% 정도”라고 했다. 임대업을 하는 김모(64)씨는 “7.3평짜리 상가를 한 두 달 전부터 근처 세 군데 부동산에 내놨는데 아직 아무 연락이 없다”고 했다.
산단이 제조업에서 물류업 위주로 변화하는 조짐도 보였다. 조씨는 “최근 빈 공장부지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물류창고를 하고 싶다는 외부인들”이라면서 “상가 매매의 경우에도 비대면 부품, 설비 판매가 늘어나 임대료 비싼 1층보다 2층, 3층 자리에 대한 문의가 더 많다”고 했다. 20년 넘게 산단에서 일했다는 강모(62)씨도 “1990년대 산단에 입주했던 기업 오너들이 나이가 들어 2세 경영이 시작될 때인데, 2세들은 공장을 이어받기 보다 공장 부지를 쪼개 임대업을 하고 싶어하니 제조업이 성장할 수 있나”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