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6월, 대한의사협회는 오산시를 지역구로 둔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오산 세교신도시에 들어설 예정이던 한 병원의 설립 허가 및 취소 과정에서 직권을 남용했다는 이유에서다. 안 의원은 병원 개설 허가 자체가 잘못됐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맞섰다.
도대체 어떤 병원이었길래 국회의원과 대한의사협회가 고발까지 하며 맞붙었던 걸까. 오산에 들어설 예정이었던 병원은 정신과 보호병동을 갖춘 곳이었다. 흔히 ‘정신병원’이라고 말하는 시설이다.
이 병원이 들어설 예정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주거지와 학교 인근에 정신병원이 들어서는 것에 반대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지역을 지역구로 둔 안민석 의원도 여기에 동참했다. 결국 병원은 설립 허가가 취소됐다. 대한의사협회와 정신장애인가족협회 등이 반발했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오산 세교신도시에서 정신병원 설립을 놓고 벌어진 다툼은 한국 사회에서 정신질환을 ‘나쁜 것’으로 치부하는 수많은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환자뿐 아니라 지역 사회에도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정신병원이나 통합정신건강센터를 ‘소방서’에 비유한다. 언제 어디서 화재가 발생할 지 알 수 없지만 소방서가 지역 사회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안심하고 살아간다. 통합정신건강센터 같은 시설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모르거나 모른 척 하고 있을 뿐 한국 사회에서 10명 중 1명은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 이들을 치료하고 관리할 시설이 지역 사회에 없으면 이들은 치료를 포기하거나 자신의 병을 숨기게 된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이들이 지역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범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조현병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조현병 유병률은 전체 인구의 1% 정도다. 국내에만 50만명 정도의 환자가 있다고 추산된다. 하지만 국내에서 정식으로 조현병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는 환자는 12만명에 불과하다. 대략 5명 중 4명은 치료를 받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수많은 조현병 환자들을 음지로 숨어들게 한다고 지적한다. 정신병원이나 통합정신건강센터 설립을 놓고 반대하는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환자들은 치료를 꺼리고 숨게 된다. 치료를 받고 싶어도 제대로 된 시설이 없기 때문에 충분한 치료를 받을 수도 없다.
얼마 전 논란이 됐던 영화 ‘F20′처럼 조현병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미디어가 낙인 효과를 키운다는 지적도 있다. ‘F20′은 조현병 아들을 둔 엄마가 강박에 빠져서 살인자가 된다는 스토리다. 당초 지상파로도 방영될 예정이었지만 정신장애인 단체들이 방영 반대 운동을 벌인 끝에 지상파 방영은 무산됐다. 조현병 환자들은 ‘F20′이 조현병에 대한 편견과 공포를 키우는 데만 집중하고 환자 가족이 겪는 아픔에는 무신경했다고 비판한다.
자신이 조현병 환자인 동시에 병을 극복한 과정을 다룬 ‘바울의 가시’ 저자인 이관형 작가는 “개인의 능력을 잘 발휘하면서 살아가는 조현병 당사자들도 있다”며 “대부분의 조현병 당사자들은 목소리를 높일 힘이 없으니 사회가 알아주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신질환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국립정신건강센터가 2018년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6명(59.9%)은 ‘최근 1년 간 정신건강문제를 경험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국민 10명 중 8명(82.3%)은 ‘누구나 정신질환에 걸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도 조사됐다.
그런데도 정신질환의 치료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68.1%에 그쳤고,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도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비율도 63.6%였다. 특히 10명 중 6명(60%)은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은 일반인에 비해 위험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같은 질문에 독일은 25%의 사람만이 ‘정신질환자는 공격적이고 난폭하다’고 대답했다. 한국 사회는 스스로가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면서도 정신질환자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힘들다거나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모순적인 모습이다.
실제로 정신질환자는 위험한 걸까. 조현병 환자의 전체 범죄율은 일반인의 5분의 1 수준으로 보고된다. 이보다 더 낮다는 통계도 있다. 권용구 한국정신장애인자립센터 소장은 “정신장애인이라는 약자를 마녀사냥 하는 격”이라며 “일반인이 비슷한 범죄를 저지른다면 이렇게까지 이슈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중범죄를 저지를 확률은 정신질환자가 일반인보다 높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전체 살인사건 가해자 중 정신질환자 비율은 8.72%(2017년)였다.
국립정신건강센터에 따르면 한국의 정신질환 진단자의 정신건강서비스 이용률은 22.2%에 불과하다. 40%대인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국가의 절반 수준이다. 정신질환을 가진 환자가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포기하게 만들다보니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가 생기고, 미디어는 이런 범죄를 과대포장해서 전하고 다시 정신질환에 대한 공포와 낙인이 커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더라도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정신질환자도 많다.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에 따르면 정신질환자의 자살률은 전체 인구의 자살률보다 7.2배 높다. 조현병 환자의 사망원인에서 자살은 10~15%를 차지한다. 일반인보다 15~25년 정도 수명이 낮은 가장 큰 이유다.
전문가들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우리 사회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역 사회가 정신질환자의 치료를 위한 시설을 인정하고,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인 낙인을 지워서 환자들이 양지로 나올 수만 있다면 조현병 환자의 중범죄나 자살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차승민 국립법무병원 전문의는 “암도 건강검진으로 초기에 발견해 치료하듯, 조현병 역시 적시에 발견해 적기에 치료한다면 예후가 좋다”고 말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역시 “조현병은 꾸준한 의학적 치료 없이는 재발하고 악화지만, 거꾸로 치료가 잘되면 없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