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2019년 4월 17일 안인득이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방화와 흉기난동으로 5명을 살해하고 17명을 다치게 한 지 1000일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안인득은 조현병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고, 안인득 사건 이후 ‘조현병 포비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조현병 환자에 대한 공포심이 커졌다. 하지만 안인득은 살인자 이전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된 환자였다. 전문가들은 안인득이 제대로 된 관리와 치료를 받았다면 이런 끔찍한 사건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올해로 정신분열증을 조현병으로 부른 지 10년이 됐다. 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편견을 없애기 위해 병명을 바꿨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선 조현병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적절히 관리하지도 못하고 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경찰의 방치, 법을 집행하는 국가의 부재는 지속된다. 법원은 법리에 따라 심신미약 감경을 해주는 모습만 드러나니 법과 국가에 대한 신뢰마저 흔들리고 있다.”

지난 10월 26일 안인득의 방화 살인으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사건이 발생한 지 924일이 된 날이었다. 유족을 대신해 기자들 앞에 선 건 법률사무소 ‘법과치유’ 소속 변호사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였다.

법률사무소 법과치유의 오지원 변호사는 2년이 넘게 흐른 뒤에야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는 이유로 “안인득은 2010년 공주치료감호소에 입소할 당시 조현병 판정을 받았으나 2016년 7월 이후 치료가 중단돼 상당 기간 방치됐다”며 “이 사건과 같이 치료중단 상태에서 범행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경찰이 현행법만이라도 제대로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의 미흡한 대처가 조현병 환자였던 안인득의 잔혹한 범행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경찰을 비롯한 국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유족 측은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에 소장을 냈다. 피고는 대한민국, 청구금액은 3억80만6383원이다.

2019년 4월 18일 민갑룡(오른쪽) 당시 경찰청장이 경남 진주시 한일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안인득 사건 유족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조선DB

단순히 선언적인 의미의 소송만은 아니다. 법조계에서는 유족 측에 충분히 승산이 있는 싸움이라고 보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경찰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정황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경찰은 안인득이 사건을 저지르기 한 달 전인 2019년 3월 고위험 정신질환자에 대한 현장 대응 기본조치를 규정하는 매뉴얼을 만들었다. 고위험 정신질환자에 대해서는 신고 이력과 약물치료 중단 여부 등을 검토해 현장에 충돌한 경찰이 전문의 진단과 보호 요청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2018년 9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안인득에 대한 경찰 신고만 8차례가 있었지만, 현장 경찰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범행 직전인 2019년 3월에만 5차례나 신고가 들어왔다. 그러나 매뉴얼은 지켜지지 않았다. 안인득은 2016년을 끝으로 조현병 치료를 중단한 상태였다. 경찰이 약물치료 중단 여부를 확인만 했어도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의 법제이사를 맡고 있는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경찰이 조회만 했어도 안인득이 보호관찰 대상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을 텐데 최소한의 신원 조회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안인득의 형은 안인득을 입원시키기 위해 (사건이 벌어지기 전) 두 달 동안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형은 직계가족이 아니라 권한이 없었고, 안인득의 어머니는 입원 중이었다”며 “경찰이 응급입원을 시키거나 지자체가 행정입원을 시켰어야 했는데, 누구도 나서지 않았고 사건이 터졌다. 우리 학회가 이번 소송을 돕기로 한 건 이런 일이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안인득 사건 당시 경남 진주시 모 아파트 화단 바닥에 희생자가 흘린 핏자국과 주인을 잃은 신발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조현병 환자에 대한 치료와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끔찍한 사건으로 이어지는 일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2018년 7월 경북 영양에서 발생한 경관 살해 사건과 올해 5월 남양주에서 발생한 존속살해 사건에서도 ‘국가의 부재’는 여전했다. 두 사건 모두 조현병을 앓던 환자에 대한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던 와중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영양 경관 살해 사건은 조현병을 앓고 있던 아들의 입원비가 부담이 된 노모가 아들을 무리하게 퇴원시켰다가 발생했다. 주치의의 만류에도 보호의무자인 노모가 퇴원을 결정하자 이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병원을 나온 아들은 약물치료를 하지 않으면서 증상이 악화됐고 결국 살인에 이르렀다.

남양주의 한 빌라에서 조현병을 앓는 아들과 함께 살던 A씨(60)의 사례도 비슷하다. 그는 아들이 자신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한다며 경찰에 찾아가 신고했다. 하지만 출동한 경찰은 A씨의 아들이 특별한 문제가 없다며 별다른 조치 없이 복귀했다. A씨는 한 달 만에 아들의 손에 목숨을 잃고 집 앞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두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건 조현병 환자에 대한 국가나 지자체의 관리에 구멍이 뻥뻥 뚫려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이 언급하는 부분은 크게 여섯 가지다.

1) 보호의무자에 대한 입원제도는 퇴원 시 자·타해 위험의 상태와 관련 없이 보호자의무자의 동의철회만으로도 퇴원이 가능하다.
2) 폭행치사의 전과가 있었음에도 외래치료지원제 등은 당시에는 보호의무자의 동의가 있어야 시행되는 법조항에 의해 유명무실했다.
3) 퇴원 후 집으로 찾아가는 ‘퇴원 후 사례관리’나 지역사회 사례관리는 전혀 없었고 치료는 바로 중단됐다.
4) 재발한 상태에서 경찰이 3번 출동했지만 정신건강전문가의 지원은 없었다.
5) 경찰이 입원을 시키려 했어도 어머니의 동의가 없으면 입원이 불가능했다. 법 조항만으로는 행정입원이 가능하나 보호의무자가 있는 경우 현실에서는 거의 진행되지 않으며 치료비도 지원되지 않았다.
6) 경찰이 응급입원을 결정했다고 해도 공공병상에 경찰을 위한 응급병실이 준비돼 있지 않아 경찰은 입원시킬 병원을 찾아 적게는 수 시간, 길게는 종일을 헤매야 한다.
'국내 조현병 환자의 현황과 적정 치료를 위한 제언', 한국과학기술한림원, 2020년.

경찰은 안인득 사건 이후 현장에 충돌한 경찰이 조현병 환자를 응급입원 시킬 수 있도록 했지만, 실제 현장에선 바뀐 게 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안인득 사건 직후에는 경찰의 응급입원 신청 건수가 일시적으로 늘었지만 그 이후에는 다시 줄어드는 추세다. 2019년 4월부터 12월까지 경찰이 신청한 응급입원 건수는 6392건이었지만 지난해에는 전체를 통틀어 5431건에 불과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의 역할은 응급입원 신청까지”라며 “대상자가 거부를 하면 우리나 정신건강센터 전문요원이나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조현병 환자는 적절한 약물치료와 관리를 받으면 충분히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부와 경찰, 지자체의 무관심 속에 조현병 환자들은 방치되고 있고, 몇몇이 일으키는 사건·사고 때문에 나머지 조현병 환자까지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더욱 외진 곳으로 밀려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국립법무병원에서 조현병 환자들을 치료하는 차승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조현병 환자를 비롯한 정신질환자에 대한 ‘국가책임제’가 자리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 전문의는 “국가가 나서서 입원부터 퇴원까지, 퇴원 이후에 외래진료를 제대로 받는지까지 관리하고 관여해야 하는데, 한국은 모든 걸 보호자에게만 맡겨놓고 국가는 관여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안인득 사건이 터지고 시간이 흘렀지만 바뀐 게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안인득 사건 피해자 유족들이 ‘국가의 책임을 묻겠다’고 손해배상 소송에 나선 게 조현병 국가책임제 도입의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다. 백종우 교수는 “산업화가 가속되고 고령화, 핵가족화되면서 방치되는 조현병 환자가 늘고 있다”며 “국가에서 환자를 입원시키는 게 끝이 아니라 지자체와 지역사회가 나서서 조현병 환자에 대한 정기적인 점검과 체크를 통해 정상적인 삶이 가능하도록 방향을 바꿀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