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체를 가장 먼저 만지는 사람이 있다. 바로 검시조사관이다. 영안실에서 사체를 부검하는 부검의와는 다른 이들이다. 검시관은 사망사건이 접수되면 현장으로 출동해 사체는 물론 사망 장소에서 각종 정보를 수집한다. 부패가 심한 사체를 검시하는 경우도 허다해 검시관들 옷에서는 시체 썩은 냄새가 빠지질 않는다.

검시관은 사망사건에서 보조적 역할이 아니라 수사방향을 결정하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사체 검시를 통해 1차 사망 원인을 내리기 때문이다. 검시관이 타살로 추정된다고 판단하면 경찰 수사도 타살에 초점을 맞추고 진행된다.

경찰이 전문적으로 검시관을 선발하기 시작한 건 2005년부터다. 올해에는 ‘73주년 과학수사의 날’을 맞아 ‘베스트 검시조사관’이라는 상이 새롭게 만들어 졌다. 베스트 검시관의 첫 주인공은 검시관 10년차를 맞은 김진영 검시관이었다. 지금은 송파·수서·강동경찰서의 관할을 담당하고 있는 김 검시관을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만났다.

1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송파경찰서에서 김진영 서울경찰청 검시관이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 고운호 기자

김 검시관은 2003년 한양대학교 공과대학을 졸업한 뒤 삼성에 취직했다.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던 김 검시관은 2년 만에 사표를 쓰고 국립의료원 간호대학으로 진학했다. 이후 서울 아산병원에서 일하다 2012년 12월 검시관이 됐다. 지금은 송파·수서·강동경찰서에 접수된 사망 사건을 맡고 있다.

김 검시관은 진실을 밝힌다는 의무 하나로 오늘도 사체를 들여다 보고 있다. 일이 고될 때면 18세기 프랑스 작가 볼테르가 남긴 말 ‘살아있는 자는 존중해야 하지만, 죽은 자에게는 진실만을 빚져야 한다’를 생각한다고 한다.

김 검시관은 “사연 없는 죽음은 없다”며 “모든 죽음이 안타깝지만 현장에 집중하려 한다”고 했다. 이어 “살아계신 유족에게는 존경을 표하지만, 돌아가신 분에게는 진실만을 밝히도록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실제 김 검시관 판단으로 묻힐 뻔한 살인사건이 드러난 게 한둘이 아니다. 2015년 1월 40대 여성 이모씨 사망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수사관들은 이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판단했으나 김 검시관이 입술 안쪽에 탄 상처를 발견해내면서 수사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해당 상처가 립스틱 자국이라는 결론을 확신할 수 없었던 김 검시관은 직접 이씨 집을 찾아가 단서를 찾기 시작했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흔적이나 정황은 발견하지 못했고, 이씨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베개에서 이로 꽉 문 자국과 피를 토한 흔적을 발견했다.

김 검시관은 이씨가 독극물을 먹었다고 판단, 수사팀을 설득해 부검을 의뢰했다. 부검 결과 김 검시관이 발견한 것은 이른바 ‘청산가리’로 인한 상처였다. 이씨 남편에게는 내연녀가 있었고, 내연녀가 이씨 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몰래 청산가리를 타 살해한 것이었다. 내연녀는 징역 25년이 확정됐다.

검시관은 단순히 사체에 대한 검시만 하지 않는다. 사망자 지인을 통해 각종 정보를 모으고, 사망자가 방문했던 장소 등을 찾아 각종 단서를 수집한 뒤 종합적인 판단을 내린다. 판단을 유족에게 설명하는 것도 검시관 일이다.

이처럼 검시관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만큼 관련 지원이나 인프라 구축, 법·제도 마련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 검시관은 “제도가 만들어진 지 16년이 지나가고 있는데, 검시관을 많이 뽑아줬으면 좋겠다”며 “검시관이 정기적으로 정신건강 진단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음지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일하고 있는 김 검시관에게 검시관의 세계에 대해 들었다.

사진 / 1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송파경찰서에서 김진영 서울경찰청 검시관이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1.11.11. / 고운호 기자

검시조사관은 어떤 일을 하나.

“일반인들이 흔히 아는 역할과는 다르다. 드라마 등 방송에 나오는 검시관들은 대부분 부검의다. 우리는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해 1차 사인규명을 한다. 몸속은 못 보지만 겉을 보고 판단한다. 사체를 보고, 사건 현장을 조사하고 고인 주변인들 이야기를 듣고 종합적으로 결론을 내린다. 이후 검시조사관은 담당 수사관에게 판단한 사인을 전달하고 수사 방향 잡는다.”

모든 사망 사건에 출동하는 것인가.

“그렇다. 초반에는 살인사건이나 미제사건 위주로만 출동했다. 그러나 갈수록 살인도 방법도 고도화되고 사인 규명에 한계가 생기면서 모든 현장에 가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비용부담이 있지만 사인규명에서는 확실하기 때문이다. 집 안에서 사망하면 석연치 않은 점들이 보일 수 있는데, 그걸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

현장에서 시신을 보는 건 쉬운 일 아니다.

“일반적으로 죽은 사람을 만지는 경우는 직계 부모님 말고는 거의 없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명씩 본다. 병원에서 있었기 때문에 특별한 거부감은 없었다. 맨날 보니까 안타까운 걸 보고 느끼는 건 있다. 몰라도 될 죽음들을 계속 보는 거니까. 즐겁게 살아도 되는데,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는 것이다. 자살 같은 건 사인도 많고 사유도 많다. 고인에 감정이 이입될 때는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유족과 대면해야 한다.

“극단적 선택 사례는 더욱 안타깝다. 병으로 돌아가시면 죽음에 대한 애도를 하지만, 극단적 선택 사건은 ‘왜 죽었을까’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을 한다. 슬픔에 잠긴 유족과 첫 대면이 중요하다. 나로서는 캐물어야 하는데, 가족들은 화를 내신다. 그럴 때는 시간을 두고 기다렸다 물어보기도 한다.”

검시관들에게 어떤 게 필요할까.

“우선 검시관을 많이 뽑아줬으면 좋겠다. 제도가 만들어진 지 16년 지나가고 있는데, 검시관이라는 명칭이 확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외국은 법률적인 규정도 있고, 절차나 역할의 범위도 정해져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건 없다. 쉽게 말하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없다.”